"민주 발전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관용의 시대'를 통과할 때다. 민주주의는 괜히 주는 것 없이 밉고 도저히 같이 지내기 싫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했을 때 결정적인 발전을 이룩한다."
평론가 전인권(1957~2005)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저 글을 썼다. 그 해 말 대선에서 승리한 DJ는 화해와 관용을 기치로 '국민의 정부'를 열었고, 99년 자신을 테러하고 사형까지 언도했던 정적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을 약속했다.
그 약속은 처음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건립 계획 자체를 백지화하려는 측과 기념관(과 건립정신)을 전유(專有)하려는 측의 대립은 국고보조금 집행을 둘러싼 소송전으로 이어졌고, 사업은 고비마다 주저앉곤 했다. 2012년 개관한 서울 마포의 박정희대통령기념ㆍ도서관은 한 논쟁적 정치인의 기념관인 동시에 한국 정치민주주의가 어렵사리 이룩한 극적이고 상징적인 역사이기도 하다.
5.16 군사정변과 함께 정치인 박정희가 한국 현대사에 등장한 지 올해로 만 52년이 됐고, 올해는 그의 딸이 이끄는 정부가 출범했다. 전국의 여러 지자체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흐릿한 연고까지 더듬어가며 크고 작은 기념관(물)들을 경쟁적으로 건립하고 있다. 엄혹했던 유신독재의 시간을 몸으로 겪고 책으로 배운 이들 중에는 저 시도들을 분노로 막아서거나 냉소로 외면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반세기가 지나도록 우리는 박정희라는 거대한 분열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팝아트협동조합이 최근 진행하고 있는 '박정희와 팝아트투어'라는 이름의 '박정희 관광'을 우리가 주목한 까닭은 그것이 저 벽을 넘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라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박정희라는 텍스트를 다양한 방식으로 읽고자 한다고 그 취지를 밝혔다. 행사 기획자인 강영민씨의 팝아트 작품 '박정희'(위 사진)도 그런 의미다. 강씨는 "박정희를 흑백이 아닌 다양한 색으로 표현한 까닭은 각자의 감성으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우리가 마포의 기념관과 경북 구미의 박정희 생가 등지에서 만난 시민들도 이미 그들 나름의 시선으로 '박정희'를 관광하고 있었다.
전인권씨의 저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민주주의의 핵심적 단계는 '반대파 용인의 단계'이다. 어느 정도의 반대파냐 하면 화해의 감정을 느끼기 불가능할 정도로 적대적 감정을 느끼는 반대파다. 또 어느 정도의 용인이냐 하면 그들에게 정권을 내어줄 수 있는 정도의 용인이다. 그래야만 민주주의는 꽃핀다."
최윤필기자 proos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