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다리는 다리인가 팔인가? 우리는 다리(脚)라고 하는데 서양 사람들은 팔(腕)이라고 한다. 그래서 다리가 10개인 오징어, 갑오징어, 꼴뚜기를 십각목(十脚目), 다리가 8개인 문어, 낙지, 주꾸미 등은 팔각목(八脚目)이라고 하지만, 십완목(十腕目), 팔완목(八腕目)이라고도 부른다.'
달팽이처럼 느리게, 그러나 속살이게처럼 영민하게 한 평생 숲과 흙, 곤충과 새를 벗 삼아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으로 자연이 품은 비밀을 탐구해 온 권오길(73)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가 지난 3년 가까이 인터넷에 연재한 글을 묶어 책으로 내놓았다. 저자가 강단을 떠난 뒤 한갓진 동네에서 직접 밭을 갈고 씨를 부리며 살아가면서 깨달은 사계절의 변화무쌍함과 생명의 신비로움을 예찬하는 자연 관찰 일기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시종 알콩달콩 살아가는 게와 조개의 멋진 '도움살이'부터 먼 옛날 우리 선조들의 슬픈 가난이 그 이름에까지 덕지덕지 달라붙은 '짚신벌레', 바지랑대 사이에 걸린 빨랫줄을 사뿐히, 쪼르르 내달리는 재주꾼 쥐, 낚싯줄에 매달린 암컷에 주책없이 달려들어 줄줄이 딸려 나오는 바람둥이 홍어 수컷, 바다로 내려가지 않고 생뚱맞고 뜬금없게도 슬그머니 산간 계곡으로 내처 역주행해 '계곡의 여왕'으로 살아가는 송어의 잔챙이 산천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따라 부엌에서 안마당에서 뒷동산 산책길에서 펼쳐지는 신비로운 생물들의 비밀스러운 생태 이야기를 조심스레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모든 생명의 삶의 터전인 자연이 내뿜는 생동하는 아름다움에 흠뻑 빠지게 된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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