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ㆍ달러 환율 100엔선 돌파는 한국 경제에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가뜩이나 경기 회복세가 미약한 상황에서 엔저 가속화에 따른 부작용까지 겹칠 경우, 저성장 기조가 더욱 고착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엔ㆍ달러 환율 100엔선은 그간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심리적 저항선으로 받아들여졌다. 단기간 가파른 상승세에 대한 거부감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주요 20개국(G20) 회의가 '아베노믹스'에 사실상 면죄부를 준 뒤에도 엔화는 줄곧 달러당 98~99엔대에 눌려 있었지만 9일(현지시간) 미국의 고용지표 호조를 발판 삼아 마침내 100엔대를 뚫었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를 '1차 엔저'로 본다면, 100엔 돌파 이후엔 '2차 엔저'가 시작되는 셈이라고 지적한다. 1차 엔저가 일본 정부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장기간 비정상적 고평가를 받았던 엔화 가치가 정상화하는 과정이었다면, 2차 엔저는 미국 경제 회복세에 따른 엔화 약세 국면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엔화 흐름이 일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흘러갈 수 있다는 의미다.
일단은 엔ㆍ달러 환율이 105엔대까지 추가 상승할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선 120엔대까지 급상승할 것이라는 극단적 전망도 나오지만, 엔화의 향방에는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 글로벌 경제의 흐름 등 변수가 많아 쉽게 점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달러당 100엔을 일단 찍은 만큼 앞으로 상당기간 엔저가 추세로 굳어질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는 편이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 경제에는 한층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과 경합 관계인 자동차, IT 등 주요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엔ㆍ달러 환율이 100엔에 이르면 한국의 총 수출이 3.4%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실제 국내 기업의 올해 1분기 대일(對日) 수출은 1년 전보다 9.5%나 줄었다.
금융시장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10일 엔ㆍ달러 환율 100엔 돌파 소식으로 일본 닛케이225지수(14,607.54)는 2.93% 급등한 반면, 코스피지수(1,944.75)는 주요 수출기업의 실적악화 우려 속에 외국인의 투매로 1.75% 급락했다. 일본의 저금리 자금을 이용한 '엔 캐리 트레이드'가 본격화할 경우 급격한 자본유출입에 따른 금융시장 전반의 혼란도 우려된다.
정부는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현 상황을 심각하게 지켜보면서 국내 기업들의 피해에 대비한 다양한 대응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부작용이 큰 환율 개입은 자제하면서 수출중소기업 지원 등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선물환 포지션 제도 등 기존 자본유출입 규제 강화에 나설 수도 있다. 이날 원ㆍ달러 환율은 달러화 강세와 당국의 개입 경계감 등으로 전날보다 15.1원 급등한 1,106.1원까지 치솟았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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