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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 깜빡했다가… 프로기전서 충격 68집반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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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 깜빡했다가… 프로기전서 충격 68집반패

입력
2013.05.10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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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기전에서 무려 68집반승이라는 엄청난 차이의 대국 결과가 나왔다.

올해 신설된 바둑nTV배 팀서바이벌은 프로들의 공식 대국에 아마추어들이 종종 즐기는 이른바 '방내기' 방식을 도입한 독특한 이벤트기전이다. 50세 이상 남자 시니어기사와 여자기사가 2인1조로 팀을 이뤄 각각 상대팀 선수와 따로 대국을 벌이되 1대 1 동률일 경우 두 대국의 집 차이를 합산해 최종 승패를 가린다. 따라서 내가 조금 바둑을 망쳤더라도 대신 팀 동료가 큰 차이로 이기면 팀이 승리할 수 있다. 대회 규정이 이렇다 보니 프로들의 대국에서는 보기 드문 큰 차이의 승부가 속출하고 특히 시니어기사들이 젊은 여자기사들에게 혼쭐이 나고 있다.

이 대회에는 모두 16개 팀이 출전해 현재 본선 1회전이 진행 중인데 70대 노장 고재희(74)와 여류 최강 박지은(30)팀이 이처럼 독특한 대국 규정 덕택에 행운의 승리를 거두고 8강 토너먼트에 진출해 화제가 됐다.

고재희-박지은팀은 8일 정대상-김윤영팀과 경기를 했는데 고재희가 김윤영에게 불계패해 일찌감치 패색이 짙었다. 불계패의 경우에는 무려 50집을 진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대상이 적당히 바둑을 마무리해서 50집 이하로만 지면 팀 승리를 거둘 수 있다.심지어 아예 중간에 돌을 거둬도 괜찮은 상황이었다. 서로 불계패를 했으므로 똑같은 입장이지만 이 경우 팀원들의 랭킹 합계가 많은, 즉 랭킹이 낮은 쪽이 승리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박지은(91위)과 고재희(244위)의 랭킹 합계가 335, 김윤영(159위)-정대상(190위)은 349이므로 김윤영-정대상팀이 이기게 된다.

그러나 정대상은 워낙 속기파인데다 평소 난전을 즐기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이날 대국 역시 초반부터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박지은이 정대상의 대마를 잡아 아무래도 50집 이상 차이가 날 것 같았다. 따라서 정대상은 얼른 불계패를 선언하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정대상은 바둑에 너무 취해서 대국규정을 깜박했는지 좀처럼 돌을 거두지 않고 대국을 계속했다. 옆에서 이 바둑을 지켜보던 팀 동료 김윤영이 "그냥 던지시면 되는데…"라면서 발을 동동 굴렀지만 결국 정대상은 끝까지 대국을 마쳤고 계가까지 한 결과 무려 68집반이라는 엄청난 차이로 지고 말았다. 뒤늦게 아차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결국 고재희-박지은팀이 18집반을 이긴 것으로 판정이 났다. 정대상이 대국 규정을 깜빡한 탓에 손안에 다 들어온 승리를 스스로 상대에게 헌납한 셈이다.

한편 대회 방식이 이같이 일반 대국과 전혀 다르다 보니 바둑팬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측면이 있지만 대신 바둑의 본질을 흐린다는 따가운 시선도 있다. 그래서 한국기원은 이 대회 본선 대국을 모두 비공식으로 처리, 공식 전적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박영철 객원기자 ind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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