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균,쇠'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 50년 문화인류학 연구의 결정판뉴기니·아마존 등 39개 부족사회 연구인간의 얼굴 한 전통적인 삶 통해 현대문명이 잃은 것과 얻은 것 통찰
퓰리처상을 수상한 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76)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의 50년 문화인류학 연구의 결정판으로 삼을 만한 책을 새로 냈다. (원제 The World Until Yesterday)다. 이 책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찾아서' 과거로 떠난다. 1964년 뉴기니 섬에서 연구를 시작한 저자는 지금까지 그곳을 오가며 뉴기니 원주민, 아프리카 쿵족, 아마존 야노마모족, 알래스카 이누피아크족, 필리핀 아그타족 등 39개 부족사회를 연구했다. 그리고 '현대사회가 과연 과거보다 나아졌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책은 분쟁 해결법, 육아와 노인 문제, 종교의 미래, 각종 질병에 대처하는 법 등 인간 삶에 밀접한 주제에 관해 전통사회와 현대사회를 비교하고 있다. 분량이 만만치 않지만 다채로운 전통사회의 모습을 친구에게 이야기 들려주듯 풀어내고 있어 속도감 읽게 읽힌다. 다큐멘터리를 보듯 전통사회 면면을 구석구석 흥미롭게 훑어주는, 대작 탐사기 같다.
전통적인 삶은 무엇보다 인간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열변을 토하는 뉴기니인들의 대화를 엿들어 보니 같은 단어가 반복되어 일천한 언어실력으로도 그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는데, 그 내용인즉슨 누가 고구마를 다 먹어치웠다거나 누가 언제 어디다 소변을 봤다는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자다 일어나서도 한참을 대화할 정도로 수다는 그들에게 소중한 오락거리다. 스마트폰 게임과 인터넷의 바다 속에 빠져있으면서도 현대인들이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것 역시 이런 수다를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법치주의를 표방하는 현대사회는 죄를 저지르면 처벌을 받지만, 분쟁을 신속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쌍방의 감정까지 화해시키는 전통적인 보상 협상만 못할 때가 왕왕 있다. 전통사회의 부족장은 판정하고 결정하기보다는 중재자 역할을 할 뿐이라 양측이 모두 수긍할 타협안을 제시해야 한다. 다시 얼굴을 맞댈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에 관계 회복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다.
저자는 또 현대의 육아법이 인성 발달에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일대일로 밀착해 아기를 돌보는 전통사회의 육아법은 맞벌이나 친척들이 멀리 있기 때문에 유아원이나 탁아소 같은 시설에 맡겨야 하는 현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아기의 발달에는 꼭 필요한 조건이다. 아기의 울음을 모른체하라는 현대 육아법과 달리 아기가 울 때 거의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전통사회에서 자란 아기는 대부분 10초 이내에 울음을 그쳤다. 우는 아기를 그냥 둘 경우 스트레스 호르몬 코르티솔이 분비돼 나중에 아기의 뇌 성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더 오래 운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요즘 유모차는 엄마 얼굴을 마주 보는 구조인데 전통사회에서는 아기를 어깨 위에 얹거나 포대기로 업어 엄마와 똑같은 시야를 공유하도록 했다. 그 덕분에 신경운동계의 발달이 더 빨랐다. 아기가 모닥불 옆에서 놀거나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놀아도 바로 제지하기보다는 일단 지켜보는, 극단적으로 자유방임적인 양육법 역시 아이들을 자주적인 주체로 클 수 있도록 한다. 아기들의 욕구를 꺾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호주 원주민 아란다족은 맛있는 음식을 젊은 사람이 먹을 경우 끔찍한 재앙이 닥친다는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마흔이 넘어야 젊은 후처들을 거느릴 수 있도록 하는 관습이 있다. 늙은 남자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 먹을 것이 부족한 과거에는 노인을 내다버리기도 했지만 노인의 지혜에 기대 작동하는 사회가 더 살만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제의 세계와 비교할 때 현대사회에 사는 걸 더 고마워해야 할 요소도 분명 존재한다.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쿵족은 여자 혼자 분만을 감당하게 하고, 분만과 동시에 아기를 살펴 선천적 장애가 있을 경우 살해한다. 볼리비아 시리오노족은 이주를 앞두고 병든 중년 여인을 버리고 떠나는 풍습이 있다. 인도네시아 다니족?경우 1961년 벌어진 부족 간 전투에 6세 소년까지 동원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책에서 전통사회를 미화도 비하도 하지 않았다. 다만 어제의 세계에서 따뜻한 인간의 얼굴을 발견해, 현대사회의 위기에 대한 해답을 찾도록 도우려 한다. 전통사회를 뒤로 하고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지난 세월 속에서 끄집어낼 지혜는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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