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에게 올해 4월과 5월은 '잔인한 달'로 기억될 듯 하다. 온 나라의 관심이 금리 결정에 쏠린 상황에서 외부를 설득할 근거인 경기 상황조차 애매모호한 국면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결국 한은은 나름의 계산대로 한 번은 동결, 한 번은 인하를 택했지만 근거가 빈약한 결정이라는 비난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한 달 새 4대 3에서 6대 1로
시장은 상당한 충격을 받은 표정이다. 지난달 7명의 한은 금융통화위원들이 4대 3 한 표 차의 동결 결정을 내린 지 한달 만에 6대 1의 여유 있는 인하 결정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김중수 총재가 최근 인도 출장에서 "이제 정부가 나설 차례"라는 등의 발언으로 금리 동결을 강하게 시사했다고 믿었기에 충격은 더 컸다.
하지만 한은은 김 총재의 인도 발언이 보도된 직후 "지금 상황을 말한 게 아니다"면서 시장의 오해를 적극 방어했다. 이달 금리 결정을 어느 정도 예고했던 셈이다. 한은 안팎의 얘기를 종합하면 이달 6대1 인하 결정의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는 한은 집행부의 변심이다. 지난달 동결 쪽에 섰던 김 총재와 박원식 부총재, 한은 추천의 문우식 금통위원이 패키지로 의견을 바꾼 것이다. 이달 1명의 소수의견은 지난달 집행부와 함께 동결을 주장했다 돌아서지 않은 임승태 위원일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한은 집행부의 정치적 결단의 결과다. 금리 인하나 동결을 모두 택할 수 있는, 애매한 경기 상황에서 비난 여론에 둘러싸인 중앙은행의 처지를 고려한 한은이 '일단 동결 후 인하'라는 일종의 절충안을 택하자, 순식간에 6대1의 압도적 구도가 형성됐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빈약한 인하 논리
결론은 인하였지만 한은이 설명하는 이달 금리인하 배경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그간 동결 행진의 가장 주된 근거였던 '경기가 미약하나마 회복세에 있다'는 판단이 지난달과 그대로다. 한은 논리를 요약하자면 경기는 여전히 회복 중이지만 정부가 추경을 확정 지었고, 해외 중앙은행들도 금리인하에 나서는 만큼 우리도 인하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상황에서 지난달엔 동결을, 이달엔 인하를 택해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김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이달 인하 결정은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인하 결정을 꺼리게 만들었던 각종 요인들에 대한 설명도 이달에는 인하를 변호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금리인하가 가계부채를 더 늘리지 않겠냐는 질문에 김 총재는 "저소득층의 이자 부담 경감폭이 훨씬 크다"고 장점을 강조했다. 돈을 풀어도 제대로 퍼지지 않는 상황을 걱정한 지난달과 달리, 이달에는 정부의 추경 자금이 금리인하에 따라 더 효과적으로 전파될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달에는 하반기로 갈수록 크게 오를 것이라 우려했던 물가 역시 이달에는 "생각보다 국제유가와 농산물 가격이 안 오르고 있다"며 '공급 측면의 충격이 없는 한'이라는 전제까지 추가하며 "당분간 낮게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두 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한 상황에서 지난달에는 주로 위험 요인을, 이달에는 긍정적 요인을 집중 부각시켰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금리 더 내릴까
정부나 정치권에선 앞으로도 추가 인하 압박이 나올 수 있겠지만 2.5% 수준까지 내려온 기준금리가 앞으로 더 내려갈 지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많다. 한은 스스로도 "우리 금리의 하한선은 제로 금리까지 내려가는 선진국보다 한참 높다"고 밝히고 있고, 전문가들도 이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김 총재는 해외 중앙은행들의 잇단 금리인하 움직임과 관련해 "금리 조정에 따른 자본유출입 등을 감안하면 다른 나라의 금리 흐름에 따라 맞춰가는 게 필요하다"면서도 "최근 금리를 낮춘 유럽중앙은행(ECB)이나 인도, 호주 등은 모두 다른 기준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관심은 우리의 금리 하한이 어디까지냐 인데, 선진국에 근접한 호주가 최근 사상 최저로 낮춘 금리가 2.75%이고 뉴질랜드도 2.5%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우리의 현 금리 수준이 이미 상당히 낮다는 지적인 셈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여전히 상저하고의 경기 전망이 유효한 상황에서 추가 인하는 힘들다고 봐야 한다"고 내다봤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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