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고 소설 의 노시인 이적요가 말했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노인우대가 노인천대로 탈바꿈되는 시대의 항변이다. 우리는 매일 늙어가면서도 나이든 사람을 저평가하고 무시한다. 노년기가 덤으로 사는 시간이 아니라 계획했던 인생 여정의 한 구간인데 말이다. 특히 병든 노인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은 노년기 삶의 방식을 획일화시키고 있다.
김지원의 에는 왕년에 배우이며 인텔리였던 할머니가 등장한다. 할머니는 치매에 걸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할머니는 위층, 아들 가족은 아래층에 산다. 부저 소리를 듣고 가족들은 할머니의 시중을 들기 위해 올라간다. 할머니는 사람만 만나면 불편을 호소한다. 괜찮다고 하면 안 돌볼 것 같아서다. 식구들은 할머니의 말을 듣지 않는다. 들어봤자 쓸데없는 걱정이거나 상처 입히는 말들이다. 할머니가 불평하는 뜻은 대강 알면서도 못 알아듣는 척한다. 철저하게 소외된 노후를 보내는 노인의 이야기다.
김연수의 에도 암이 재발한 노모가 등장한다. 간호사였던 딸은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모신다. 노모는 옷에 집착했다. 매일 입지 않던 옷들을 골라서 입었다. 딸은 카메라에 노모의 모습을 담았다. 노모는 입는 옷에 따라 30대, 50대, 40대가 되었다. 노모는 옷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고 딸도 자신이 기억하는 어머니에 대해 얘기한다. 어머니의 서사는 노래로 연결된다. 후에 앨범 속에는 딸이 찍은 죽어가는 노모의 모습이 있었다. 어머니는 사라졌지만 노랫소리를 통해서 어머니를 기억한다는 소설이다.
두 소설에서 간병기 노인을 대하는 가족의 상반된 태도가 드러난다. 의 노모는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고적한 심정을 호소하고 이 집에서 구출해달라고 호소한다. 가족은 노모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돌봄은 형성되지 않는다. 반면 의 딸은 독특한 방법으로 어머니의 인생 전체를 재구성하는 간호를 한다. 어머니의 눈높이에서 어머니가 질병으로 얻은 깊은 좌절과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고 있다. 시간여행을 하면서 어머니의 꿈과 욕망도 발견하게 된다. '주쌩뚜디피니'는 어머니가 즐겨 불렀던 노래의 가사다. 어머니는 이 노래를 부르며 투병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에는 노인의 자리를 우리의 삶 속에서 배제시킨 것에 대한 반성과 부끄러움이 있다. 하지만 는 노인 간호를 성공적으로 제시한다. 환자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딸은 노모의 몸과 마음, 삶을 아울러 돌보아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한다. 인간성 회복을 돕는 총체적 돌봄이야말로 간호가 주목할 부분이다.
소통은 공존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소통은 변화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노인이 무기력한 존재로 사라진다면 이들이 축적한 경험과 연륜도 함께 잃게 될 것이다. 에서는 병든 어머니의 간호를 통해 서로의 삶을 재발견한다. 사랑뿐만 아니라 지식과 기술을 겸비한 유쾌한 간병이다. 늙어감에 대한 준비가 더 필요한 시점이다.
황효숙 가천대 외래교수, 간호사ㆍ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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