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한 전문병원. 수납 창구에 큼지막한 글씨로 'XX카드 사절'이란 문구가 붙어 있다. 병원을 찾은 환자들에게 특정 신용카드로 진료비를 결제하지 말라고 강제로 요구하는 것이다. 이 카드를 내려던 환자들은 불편을 감수하고 다른 카드를 사용하거나 현금을 낼 수밖에 없다. 특정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 이유를 묻자 병원 측은 "너무 높은 수수료율 때문에 부득이 하게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개정된 여신전문금융업법에 따라 지난 12월부터 대다수 병원의 신용카드 수수료율이 2% 중ㆍ후반대까지 큰 폭으로 올랐다. 신용카드 결제로 발생한 병원 매출액의 2% 이상을 카드회사가 수수료로 가져간다는 얘기다. 과거 병원은 신용도가 높고 공공성을 띠고 있어 2% 중반대 이하의 우대 수수료율을 적용 받아왔다. 그러나 지난 12월부터는 매출 규모가 클수록 수수료율이 높아지는 일반 가맹점과 같은 처지가 됐다.
일반 가맹점은 수수료율이 올라가면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높이는 방식으로 수입을 늘리지만, 병원은 이게 불가능하다. 진료비의 상당 부분을 정부에서 정한 대로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드 수수료가 늘면 병원이 진료비 액수가 정해지지 않은 비싼 비보험 진료를 늘리거나, 지나치게 높은 수수료를 요구하는 특정 카드의 결제를 거부하게 된다. 당연히 환자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본보 2012년 12월 21일자 22면).
시행 4개월여 만에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최근 일부 중소병원들이 너무 높은 수수료율을 통보해온 카드회사에 조정을 요청했는데, 진전이 없어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형 대학병원은 워낙 결제 건수가 많아 카드회사들이 어느 정도 수수료율을 조정해준 듯한데 규모가 작은 중소병원은 협상이 쉽지 않은 것 같다"고 이 관계자는 말했다.
병원들이 어떤 신용카드에 어느 정도의 수수료율을 적용 받고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수수료율이 병원이나 카드회사 모두에게 매출과 직결되는 수치라 여간 해선 공개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회원 병원들의 어려움을 알면서도 병협이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몇몇 병원의 특정 카드 결제 거부에 대해 "처음 듣는 얘기"라며 무반응이다. 병원들의 결정을 법적으로 문제 삼기는 어렵다. 결국 병원과 신용카드사간 협상이 원만하게 마무리될 때까지 불편은 고스란히 환자 몫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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