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피우면서 놀기에 여기만한 곳이 없는데 힘들게 다른 데를 뭐 하러 가요."
8일 0시쯤 서울 강북구 쌍문동 모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커피 주문대와 멀찍이 떨어진 흡연실에서는 테이블 10여 개에 둘러 앉은 흡연자들이 연신 뿌연 담배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흰색 후드티셔츠 위에 교복 상의를 걸쳐 누가 봐도 10대 여학생. 긴 머리에 눈 화장을 하고 가짜 속눈썹까지 붙인 이 여학생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꼰 채 담배를 피우며 'X같은 년' 'X발' 같은 육두문자를 쉴새 없이 쏟아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또래 3명도 욕설이 난무하는 수다를 떨며 잇달아 담배 서너 개피를 태웠다. 흡연실 유리문 앞에 관할 지구대 전화번호와 함께 '미성년자 출입금지'라고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었지만 이들을 제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중학교 3학년인 A(15)양은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담배도 피우고 커피도 마시기 위해 커피전문점을 자주 찾는다"며 "불량하다고 참견하는 어른들이 있어 요새는 골목에서 담배를 잘 피우지 않는다"고 말했다.
같은 학년 친구 B(15)양은 "어른들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귀찮아서 상대하기 싫은 것"이라며 "간섭 없이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흡연실이 있는데 굳이 다른 곳에서 담배를 피울 이유가 없다"고 거들었다.
우후죽순 생긴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의 흡연실이 10대들의 흡연 해방구가 되고 있다. 업체는 경찰 지구대와 협조해 미성년자들의 흡연실 출입을 금지하고 흡연 학생들을 계도한다고 해명하지만 10대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집처럼 들락거리는 실정이다.
본보가 지난 6일부터 이날까지 서울 강북구와 광진구 커피전문점 20곳을 직접 확인한 결과 흡연실을 갖춘 매장 12곳에서는 한눈에도 10대로 보이는 흡연자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매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늘어나고 있는 24시간 운영 커피전문점은 가출 청소년들의 새로운 안식처로 자리잡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었다.
광진구 화양동 유명 브랜드 커피전문점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던 김모(17ㆍ고2)군도 커피전문점을 즐겨 찾는 가출 청소년 중 한 명이다. 두 달 전부터 친구 2명과 함께 거리를 떠돌고 있는 김군은 "갈 데 없는 애들이 가장 많이 들르는 곳이 24시간 영업하는 커피전문점"이라며 "1,000원짜리 몇 장이면 담배도 편하게 피우고 의자에서 잠도 잘 수 있어 우리 같은 애들한테는 최고"라고 말했다.
커피 전문점 직원들은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낮에는 밀려드는 손님들 커피 주문을 소화하느라 겨를이 없고, 야간에는 주문대에서 최소 인원만 근무해 구석에 자리한 흡연실 안까지 확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광진구 한 커피전문점 매니저는 "유흥업소처럼 입구에서부터 신분증 검사를 할 수도 없고 호프집처럼 주문을 받을 때마다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강북구 한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김모(24)씨는 "신체적으로 성숙한 아이들이 많아 겉으로 봐서는 성인인지, 아니면 중고등학생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청소년선도위원회 이호근 대외협력국장은 "상당수 영업주들이 나이 확인을 일일이 하는 것을 번거롭게 여기는데다 그런 절차들이 매출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생각에 관리가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글ㆍ사진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