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는 사인으로 소통하고, 사인에 따라 웃고 우는 게임이다.
메이저리그 전문가 폴 딕슨은 저서 '야구의 감춰진 언어(The hidden language of baseball)'에서 한 경기에 양 팀이 주고 받는 사인은 무려 1,000개가 넘는다고 했다.
지난 7일 잠실 LG-넥센전. LG가 1-2로 뒤진 6회말 공격에서 선두 타자 오지환이 안타를 치고 나가자 최태원 작전코치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1루 덕아웃의 김기태 감독으로부터 사인을 전달 받은 최 코치는 2번 김용의 타석이 되자 가슴→귀→헬멧→손등→헬멧 등을 차례로 만진 뒤 양 주먹을 상하로 부딪힌다.
김용의는 희생 번트 모션을 취했다가 볼이 들어 오자 방망이를 뺐다. 다시 덕아웃을 쳐다 본 최 코치의 동작이 조금 바뀌었다. 헬멧→귀→팔뚝→가슴→팔뚝→귀→헬멧. 김용의는 넥센 선발 강윤구의 2구째에 힘차게 스윙 했지만 방망이는 허공을 갈랐다. 강공으로 바뀐 것이었다. 결국 김용의는 볼카운트 1-1에서 1루수 앞 희생 번트를 성공시켰다.
차명석 LG 투수코치는 "기본적으로 투ㆍ포수가 주고 받는 사인만 팀 당 150개"라고 말했다. 여기에 감독과 작전 코치, 선수간의 사인과 야수들끼리의 수비 포메이션 사인을 합치면 실제로 1,000번은 족히 될 것이라고 한다. 수많은 전략과 전술이 필요한 야구를 '사인의 스포츠'라 부르는 이유다. 승리를 위한 무언의 소통법이다.
작전 코치는 그라운드의 지휘자다. 때문에 감독은 순간 판단력과 눈썰미가 가장 뛰어난 코치를 발탁한다. 작전 코치는 스프링캠프 때 선수들과 사인을 정한다. 그리고 경기 전에도 선수들과 미팅을 갖고 다시 한번 숙지한다. 가령 모자를 키(key)로 정하고 왼손으로 네 번째 터치하는 부분이 '진짜 사인'이라 약속하는 것이다. 손등=번트, 팔뚝=치고 달리기, 어깨=도루 등이다. 사인을 내는 과정에서 왼손이 다시 키(모자)로 가면 이전 사인은 취소다. 상대에게 노출됐다고 판단되면 이런 약속도 바꾸곤 한다.
심재학 넥센 작전코치는 "타자가 사인을 알아 보지 못한 것 같다 싶으면 다시 내 주기도 하고, 거꾸로 타자가 작전 코치에게 사인을 보내 다시 내 달라고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시즌 도중 사인을 바꾸는 경우도 있다. 최 코치는 "상대에게 사인이 간파 당했다는 느낌이 들 때"라고 했고, 심 코치는 "우리 선수가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됐을 때는 무조건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작전 코치는 경기 내내 사인을 보내는 것뿐 아니라 득점과 연결되는 상황에 순간적으로 '고, 스톱(go stop)'의 판단을 내려 경기의 향방을 바꾸기도 한다.
최 코치는 "잘 하면 본전일 뿐인 자리지만 팀을 위해 중요한 역할이라는 자부심은 있다"고 말했다. 심 코치의 유니폼 뒷주머니에는 두꺼운 수첩이 꽂혀 있다. 수 백 가지에 이르는 경기 상황 별 주자들의 '행동 요령'이 빼곡히 적혀 있다.
작전 코치 출신의 염경엽 넥센 감독은 "심 코치의 고충을 잘 안다.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작전 코치는 다른 코치들보다 일찍 나오고 늦게 퇴근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라운드 밖에서도 스트레스를 풀기는 쉽지 않다. 판단력이 흐트러질 수 있어 일부 팀들은 작전 코치에게 '금주령'을 내리기도 한다.
야구는 모든 것이 사인에 의해 움직이고, 승패가 갈리는 게임이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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