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달비, 죽순, 미나리. 이 세 단어를 들은 당신의 입 안에는 풀향이 진하게 밴 침이 가득 고인다. 개에 비유해서 미안하지만, 파블로프는 참으로 옳았다. 나비를 닮은 곤달비 잎 위에 단촛물 버무린 밥을 한 주먹 얹고 삶은 죽순을 살짝 구워 새초롬한 연둣빛 미나리와 함께 올린다. 지금이 제철인 이 채소들에 은은하게 된장이나 막장을 곁들이면…. 당신의 입 안에선 봄이 터진다.
하우스 재배 때문에 계절을 가리는 일이 새삼스러워졌지만, 이즈음은 봄 향기 가득 품은 잎채소를 날 것 그대로 먹기 좋은 때다. 쌈밥도 좋고 고기쌈도 좋고 다른 그 무엇이라도 좋다. 별다른 조리 없이 날로 먹는 쌈채소는 그 자체로 봄의 맛이다.
국내 첫 채소소믈리에이자 한국채소소믈리에협회장인 요리연구가 김은경씨가 쌈채소를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제안한다.
채소의 적절한 조합이 맛의 비결
잎채소의 위상은 이미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음식의 국적을 가리지 않고, 샐러드 메뉴가 강화된 것이 최근 식당가의 뚜렷한 추세다. 하지만 드레싱의 위력을 빌지 않고 채소 고유의 맛을 즐기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김씨는 일단 잎채소는 떫을 것이라는 편견부터 버리고 맛에 따른 잎채소의 대략적인 분류표를 머릿속에 넣어두자고 제안한다. 잎채소는 달고 고소한 맛, 쓴 맛, 매운 맛 세 가지로 크게 분류된다. 그래서 채소를 겹쳐 먹을 때는 세 가지 종류를 골고루 섞어 먹어야 한다. 같이 씹다 보면 입 안에서 다양한 맛이 우러나와 특정 채소의 강한 맛을 적절하게 조절해주기 때문이다.
달고 고소한 맛은 적상추 청상추 레터스 로메인 등 상추류와 비타민, 근대잎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쓴 맛에는 신선초 치커리 트레비소, 매운 맛에는 겨자잎 비트잎 루콜라 등이 해당된다. 그냥 먹으면 견디기 힘든 맛일지라도, 궁합이 맞는 식재료에 곁들이면 최고의 맛을 선사하는 게 이들 잎채소의 마력이다. 라면이나 고기처럼 느끼한 맛이 나는 음식을 먹을 때 치커리나 겨자잎 같은 매운 맛 채소를 함께 먹으면 입 안이 개운해지는 식이다.
도시락으로도 좋은 쌈밥의 유혹
잎채소를 간편하면서도 맛있게 많이 먹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쌈밥이다. 소풍이나 야유회 등 야외활동이 많은 5월인 만큼 도시락으로 싸기에도 좋다. 채소를 잘 안 먹는 아이들에게도 한입거리로 먹이기 딱이다.
밥을 둘러쌀 만한 표면적을 갖춘 잎채소라면 어느 것이든 쌈밥의 재료가 될 수 있다. 쌈밥용채소는 생으로 쓸 수 있는 것과 데쳐서 써야 하는 것이 있는데, 양배추나 산나물(명이나물), 곰취처럼 데쳐 써야 하는 쌈채소는 물기를 제대로 제거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양배추처럼 조직이 평편하고 넓은 것은 열이 빨리 투과되므로 끓는 물에 짧은 시간 데치고, 호박잎처럼 열에 약해 너무 꼭 짤 경우 조직이 흐물흐물하게 헤져버리는 채소들은 넓적하게 잎을 편 후 종이타월이나 마른 행주로 지그시 눌러 물기를 짜줘야 한다.
꼭 쌈밥이 아니어도 좋다. 마트에서 파는 또띠야 피를 사다가 닭고기나 버섯을 볶아 쌈채소와 함께 둘둘 말면 또띠야가 되고, 먹다 남은 쌈채소는 잘게 썰어 맵게 무친 소면과 비벼 먹으면 된다.
다양한 양념장은 쌈채소의 화룡점정
쌈밥이든 고기쌈이든 쌈채소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양념장이 된장 고추장 쌈장이다. 이들 양념장은 맛이 강해 채소 특유의 씁쓰름하고 떫은 맛을 감춰주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채소 본연의 맛을 느끼고 싶은 사람에게는 별로인 양념장이다. 채소 맛을 한껏 살리면서도 각각의 채소와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색다른 양념장은 없을까.
고기에 달착지근하게 간이 돼 있는 너비아니에는 쌈장 대신 양파초절임을 올린다. 쌈채소의 밋밋한 맛을 새콤달콤하게 바꿔준다. 양파초절임은 제철을 맞은 햇양파를 얇게 저며 식초 설탕 소금을 넣은 후 살짝 절이거나 볶으면 된다.
차돌박이 같은 고기를 구워 채소에 싸먹을 땐 더덕소스가 좋다. 더덕을 잘게 다져 겨자장을 버무리면 된다. 겨자장은 연겨자에 식초 설탕 소금 레몬즙을 입맛에 맞게 적당히 배합해 섞는다.
혀가 순하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부드러운 맛의 양념장을 곁들여 채소 고유의 맛에 길들여 보자. 마늘장이나 두부장 같은 것이 제격이다. 마늘장은 마늘을 삶아 매운 맛을 없앤 뒤 식초에 설탕이나 올리고당을 첨가해 버무린다. 두부장은 두부를 삶거나 생으로 으깬 뒤 다진 햇양파에 겨자, 식초, 설탕, 참기름을 약간 넣어 섞으면 된다.
단백질을 보충하고 싶을 땐 쌈밥 위에 고등어쌈장이나 날치알을 올리면 좋다. 고등어쌈장은 생고등어를 1㎝ 크기로 구워 된장, 고춧가루를 넣고 살짝 끓인 뒤 으깨면 된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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