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2030 세상보기] '평균 편견'과 한국 사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2030 세상보기] '평균 편견'과 한국 사회

입력
2013.05.08 11:53
0 0

글쟁이로 먹고 살다 보면 사람들이 특정 영역에 대해 막연히 가지고 있는 인식과, 그 영역을 좀더 알게 될 때 가지게 되는 인식 사이의 괴리를 느낀다. 전자에 대해 내가 붙인 이름이 '평균 편견'이다. 가령 정치영역에 대해서는 '새누리당을 지지하지 않지만 민주당의 무능도 짜증나고 좋은 정치인이 나오면 지지해줄 수 있다' 정도로 생각하는 견해다.

'평균 편견'은 딱히 틀리다고는 할 수 없지만 '판'을 아는 이들 입장에서 볼 때는 '하나마나한 소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복잡다단하기에 생활인들은 제 삶의 영역과 자신의 학부전공 정도에서만 '평균 편견' 이상의 전문성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반대로, 모든 영역에서 '평균 편견' 수준의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상상할 수 있을까? 사실 이런 사람도 상상하기 힘들다. 누구나 한 두 분야는 자신의 삶에 접속한 문제로 체험하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일을 하지 못하는 걸인이라도 걸인 문제에 대해서는 '평균 편견'을 넘어선 견해를 말할 확률이 높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글쟁이'는 물론 '평균 편견'을 넘어서는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 자신을 포함해서 한국 사회의 글쟁이들이 그러한 역할을 하는지는 의심스럽다. 매체에 글쓰기를 하는 사람은 전문지식과 '평균 편견' 사이를 잇는 매개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지만, 학계도 언론계도 출판계도 '리그'가 작아서인지 그런 일에 열심인 글쟁이가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것 같지가 않다. 그러다보니 '매개자'가 되어야 할 글쟁이들이 학계와 대중 양쪽에 대해 '약을 파는' 약장수들이 되어 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학계에 대해서는 대중을 모른다고 약을 팔고 대중에 대해서는 전문지식이 없다고 약을 파는 것이다.

한국 사회의 평균적인 글쟁이는, 제 전공분야에 대한 '평균 편견' 이상의 인식을 통해 '라이센스' 비슷한 걸 획득한 후, 다른 많은 영역에 대해선 '평균 편견'에 해당하는 소리로 하나마나한 참견을 해대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대중적 필자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대체로 "다 좋은데 (내가 잘 아는 분야) 무엇무엇에 대해서는 쓰지 말았으면 좋겠어"로 수렴되는 경우가 흔하다. 어떤 글쟁이는 여러 전공자가 앉아 있는 술자리에서 이런 종류의 말을 한 바퀴 돌릴 경우 쓸 수 있는 분야가 남지 않게 되는 처참한 꼴도 당한다.

하지만 글쟁이들이 '평균 편견'만 말하고도 연명할 수 있는 이유는 생활인들이 자신이 관여하는 업종이나 학부전공을 제외한다면 대체로 '평균 편견' 정도의 인식에 만족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노동시간이 길고 노동강도가 엄청난 사회에 산다. 생활인들은 제 삶의 문제에 절실하게 접속해 있지 않은 이상 평균 편견 이상을 말하려는 사람들을 반기지 않는다. 짜증이나 안 내면 다행이다. 생활인들은 자신의 막연한 직감을 언어로 풀이해주는 사람을 반긴다. 그래서 그들이 어떤 글쟁이가 '통찰력이 있다'고 칭찬할 때, 그 칭찬은 대부분 글 읽는 자신의 직감에 대한 칭찬이 된다.

문제는 사회를 개혁하겠다는 진보담론조차 '평균 편견'의 소양에서 나온 개혁안들을 들이미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개혁세력의 지지자들은 그 개혁안을 지지하며 '평균 편견'의 무지를 비판하는 반대자들을 '기득권'에 물들었다고 비판한다. 다른 영역에선 진보성을 보여주던 이들도 제 삶의 문제와 결합하면 보수주의자가 된다는 비판이다. 기자실 폐쇄를 반대한다며 기자를 비판하는 것, 체벌 금지 조처에 반대하는 교사들을 비판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업계 현황을 고려한 현실적인 개혁정책을 펼치자는 목소리는 기득권을 규탄하는 거센 함성에 묻힌다.

그러나 나는 진보주의자들이 '생활인들의 보수성'이라 비판하는 현상이 오히려, 진보담론이 '평균 편견'을 넘어선 실천적인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대중의 보수성을 질타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현실에서 정치영역에 관심이 많은 글쟁이는 무엇을 할 수 있는 걸까?

한윤형 칼럼니스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