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같이 매서운 시어머니여서 힘들 때도 많았죠. 30년 전 먼저 간 남편보다 시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이 갑절은 길어요. 알게 모르게 서로를 의지하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8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 제41회 어버이날 기념식에서 효행자로 시장표창을 받은 정재순(67)씨는 "시어머니와 함께한 47년을 돌이켜보면 감회가 새롭지만, 지금은 그저 행복하다"고 소감을 말했다.
정씨는 남편을 여의고 홀로 시어머니(92)를 모시며 1남5녀를 키웠다. 남편은 강남이 개발 되기 전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서 농사를 지었다. 부동산 개발이 시작되면서 형편이 좋아졌을 때도 있지만, 남편이 사업을 한다며 모두 날리고 말았다. 그나마 집 한 채를 남기고 간 건 다행이었지만, 여성 홀몸으로 여섯 아이를 키운다는 게 쉽지 않았다. 식당 일을 해서 돈을 벌었지만, 아이들을 대학에 보낼 처지는 못됐다.
"첫째 딸 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던 해였어요. 평소 건강하던 남편이 몸이 안 좋다며 병원에 입원했는데, 하루를 넘기지 못했죠. 심장마비 같은 병이더군요. 그 때문에 딸아이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생활비를 벌어야 했습니다. 첫째 딸은 살림밑천이라고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식당일과 집안일로 늘 고단했다. 하지만 몸보다는 마음고생이 정씨를 더 힘들게 했다고 한다. 정씨는 "남자 없이 여자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데서 오는 어려움을 이루 말할 수 없다"고 거듭 말했다. 지금은 치매로 총기가 많이 흐려졌지만, 시어머니가 함께 있어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강단 있고 매서운 시어머니였는데, 효부상 받았다고 사람들이 와서 사진도 찍고 해도 무슨 일인지조차 잘 모르시죠. 삼시세끼 따뜻한 밥을 차려줘야 해서 어디 외출도 잘 못해요. 돌이켜보면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들 잘 되기만을 바라며 서어머니와 서로 의지해가면서 한 평생 살아냈죠. 아이들도 일찍부터 제 앞가림을 하려 애썼고…. 부모라는 게, 자식이라는 게, 또 가족이라는 게 그런 거 아닐까요."
정씨는 "지난해 막내를 끝으로 여섯 아이 모두 시집 장가 보낸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누구 하나 엇나가지 않고 반듯하게 자라 준 게 고맙기만 하다"고도 했다.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시어머니와 단 둘이 생활하고 있는 정씨는 "암만 힘들어도 인내를 갖고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오는 것 같다.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상까지 받아 부끄럽다"며 웃었다.
시는 이날 정씨 외에 이웃 어르신들께 쌀을 나눠드리고 아플 때 직접 병원에 모시는 선행을 한 장춘기(62)씨 등 19명에게도 '효행상'을 수여했다. 척추수술로 거동할 수 없는 시어머니의 병 수발을 하면서 보따리 장사와 식당 일을 해 남편과 자녀 둘을 대학까지 공부시킨 서정자(73)씨 등 7명은 '장한 어버이상'을 받았다. 그 밖에 '한사랑회'는 '효실천 및 노인복지기여단체'로, 서울노인복지센터는 '우수 프로그램'으로 표창을 받았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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