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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중 칼럼]장학금 사부곡(思父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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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중 칼럼]장학금 사부곡(思父曲)

입력
2013.05.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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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명예교수

선친 유지 받들어 5억 원의 장학금 기부한 어느 다섯 남매

우리는 자녀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회한 깨닫고 있는지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처음에는 어머니날로 이름을 붙였다가, 아버지의 날 얘기가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어버이날로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름이야 어찌되었든 이 날은 낳으시고, 또 길러주신 어버이를 섬기고 노인을 공경하자는 뜻을 담고 있음에 틀림없다. 날짜는 다를지언정 다른 나라에서도 어머니날 또는 아버지날을 두고 기리는 걸 보면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건 어디에서나 크게 다를 게 없을 터이다.

어버이날에 문득 떠오르는 분들이 있다. 몇 해 전, 필자가 대학 총장으로 있을 때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장학금을 기탁하겠다고 찾아왔던 다섯 남매가 그 분들이다. 다섯 남매의 아버지는 자녀들에게 생전에 늘 나눔의 삶을 강조했고, 또 삶에서 행동으로 아름다운 동행과 나눔의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그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면서도 “비록 적은 것일지라도 아끼고 모아서 형편이 어려운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주기 바란다”고 유언을 남겼다. 언론인으로서, 장학재단 임원으로서 아버지가 나눔을 몸소 실천에 옮기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고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해 온 다섯 남매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길에 기꺼이 나섰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딸인 셈이다.

다섯 남매는 함께 뜻을 모아 아버지의 모교에 5억 원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그러면서도 한사코 이런 일이 공개되기를 원치 않았다. 이들의 기부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첫 번째 기부 후 반 년쯤 지나서 다섯 남매는 아버지의 1주기를 맞아 또다시 5억 원의 장학금을 내놓았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흐뭇해하고 대견스러워 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에서는 이 분들이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두 차례에 걸쳐 선뜻 내어 준 10억 원으로 ‘동화장학기금’을 설립하였다. 이 기금은 지금도 가정 형편이 어렵지만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장학금을 지급하며 크게 도움을 주고 있다. 오남매는 모두가 같은 액수를 분담해 냈고, 이들 다수가 다른 대학 출신이면서도 장학금 기부처로 아버지의 모교를 선택한 데 필자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필자는 사부곡을 부를 만큼 선친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일화나 추억을 가지지 못했다. 우리 세대들이 거의 다 그랬듯이 어려서부터 엄격한 아버지가 무서움의 대상이었지 요즈음처럼 부자간에 자연스럽고 정겨운 대화를 했던 기억이 아스라하다. 어렸을 때나 한참 커 갈 때는 한평생 목회자의 길을 걸어오신 아버지가 바쁘셔서, 또 아버지가 퇴임하신 뒤에는 필자가 사회생활에 바빠서 서로가 때를 맞추지 못한 시간적 어긋남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돌이키자니 공연히 겸연쩍어져서 주춤거리게 됨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어버이날을 맞아 선친이 내게 남기신 유산은 무엇이고, 또 남기셨다면 나는 과연 아버지의 뜻에 맞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 되짚어 보는 기회로 삼고 싶기도 하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2년 전쯤에 제 앞길만 가리며 바삐 사는 우리 여섯 남매에게 짤막한 글을 남겨 주셨다. 거기에는 어려웠던 시기를 잘 견디고 이겨낸 너희들이 자랑스럽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서로 간에 우애가 더욱 친밀해지기를 부탁한다는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이런저런 까닭으로 비록 아버지와 깊은 소통을 하진 못했지만, 그 글을 통해서 아버지의 자녀들에 대한 안타까운 인간의 사랑과 회한을 그제야 체감할 수 있었다.

다섯 남매의 사부곡을 떠올린 김에 오늘, 어버이날에 어울릴 만한 김현승 시인의 ‘아버지의 마음’이란 시 몇 구절을 옮겨본다.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 아버지의 동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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