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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영국의 ‘과거사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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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영국의 ‘과거사 반성’

입력
2013.05.0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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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1895년 아프리카 케냐를 보호령으로 삼았다. 비옥한 풍요의 땅 케냐는 유럽인들이 살기에 좋아 제국주의의 표적이 됐다. 식민화 초기, 최대 토착부족 키쿠유(Kikuyu)족은 창만 들고 맞섰으나 영국군의 기관총 세례에 맥없이 스러졌다. 그 참상은 군인 출신인 윈스턴 처칠이 ‘집단 도살’이라고 기록할 정도였다. 1920년 케냐를 식민지로 선포한 영국은 방대한 토지를 장악하고 원주민들의 저항을 힘으로 다스렸다.

▦ 초대 케냐 총독은 “총알은 복종을 가르친다”고 말했다. 실제 저항하는 원주민을 숱하게 집단 살육, 일찍이 ‘인종 청소’ 비판을 받았다. 삶의 터전을 빼앗긴 원주민들은 영국인 지주에 고용된 노동자로 전락, 대영제국의 번영을 떠받치는 무력한 희생자가 됐다. 그러나 2차 대전 뒤, 서구식 교육을 받은 키쿠유족 출신들은 1946년 정치조직을 결성해 비폭력 저항운동에 나섰다.

▦ 영국은 식민통치 특유의 ‘회유와 분열’ 공작에 나서 1951년 차별 철폐와 흑인 대표를 포함한 입법평의회 구성을 제안한다. 영국 이주민 3만 명에 대표 14명, 인도 등 아시아인 10만 명에 대표 6명, 케냐인 5백만 명에 대표 5명을 임명한다는 속 빈 회유책이었다. 이에 키쿠유족은 1952년 무력투쟁단체 마무마우(Mau Mau)를 조직, 유럽인과 ‘친영파’ 흑인에 대한 테러를 시작했다. 식민 당국은 국가비상사태 선포와 무자비한 진압으로 맞섰다.

▦ 영국은 1954년 최대 도시 나이로비를 봉쇄하고 마우마우 용의자 수만 명을 가려내 수용소에 가둔 뒤, 거세와 물고문 등 온갖 잔혹행위로 자백과 전향을 회유했다. 뒷날 비판적 역사학자와 언론은 ‘영국판 굴라그(Gulag)’라고 폭로했으나 정부는 줄곧 “기록이 없다”며 외면했다. 그러나 당시 숲으로 달아난 마우마우 세력에 대한 무차별 폭격을 처칠이 승인한 기록 등 어두운 역사를 끝내 숨길 수는 없었다. 영국 정부의 뒤늦은 ‘과거사 반성’은 그렇게 언론과 법원의 양심에 떼밀린 것이다.

/강병태 논설고문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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