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대형 유통업체의 골목상권 진출 논란, 대기업 산업 현장의 연이은 화학물질 누출 사고, 계열사 임원의 폭행 사건, 대형 식품기업 영업사원의 협박성 폭언 등 대기업 관련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논란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다. 과거부터 누적되었던 관행들이 변화된 사회적 분위기, 경제 민주화와 맞물려 외부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기업이라는 존재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애증의 대상이다. 대표적인 대기업의 제품군만 갖고 생활해도 아무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대기업은 국민의 삶 그 자체다. 해외에서 애플생명, 도요타 아파트는 찾아 볼 수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국민들이 대기업에 거는 기대도 많고 그들이 큰 잘못을 해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그 잘못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용서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대기업 스스로는 자기 브랜드에 대한 보상으로 생각했겠지만 국민들이 그들에게 준 동의와 용서의 핵심은 체념이었다. 사건 사고에서부터 소소한 논란에 이르기까지 대기업의 소통은 참으로 논리적이고 합법적인데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았던 수많은 주장을 국민들은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통해 국민 인식 속에 대기업은 하나의 브랜드가 아니라 담론화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대기업들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주 정교한 기업 홍보를 통해 스스로를 잘 알리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불통의 벽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경고의 신호다.
브랜드는 스스로 잘 꾸며 알리고 때로 부끄러운 부분이 있으면 감출 수 있는 관리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담론의 대상은 때로 상대의 방식으로 토론하고 변화하고 공개하고 논의해가면서 하나의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필수적인 과정을 요구받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의 대기업에게 필요한 것은 기업홍보가 아닌 사회적 소통이다. 소통은 타협과 갈등, 양보와 대립, 그리고 조화와 옹호를 모두 내포한다. 향후 기업이 생존하는데 필요한 주요한 자산 중 하나가 사회적 자본인 것도 이 때문이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돈만 잘 벌던 기업들이 자신들의 명성과 브랜드 자산 확보 여부에 따라 극명하게 운명이 갈렸다. 앞으로는 사회적 자본이라는 무형의 자산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는가에 따라 기업의 흥망이 또한번 좌우될 것이다.
대기업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내세우기 위해 강조하는 글로벌 100대 브랜드 가치 순위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코카콜라도 오히려 미국에서 지난 8년간 판매 감소라는 시장의 한계에 직면해 있다. 콜라의 본질에 대한 사회적 소통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상징자본인 브랜드가 아무리 강력해도 미래에 당면하게 될 사회적 자본의 확충에 있어서는 매우 취약한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따라서 대기업의 소통은 첫째 국민들을 인격적으로 배려하는 철학을 가져야 한다. 본질을 그대로 둔 채 책임질 수 없는 말로 단기적인 위기를 모면하거나 어설픈 홍보기법으로 관점을 전환시키는 초보적인 소통의 대상으로 국민을 취급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소통의 핵심에는 상대를 인격적으로 대우하라는 원칙이 존재한다. 인격적이란 상대방이 모른다고 생각하지 말고 금방 잊을 것이라고 업신여기지 말라는 의미다.
둘째 체념하고 침묵하는 자들과의 지혜로운 소통이다. 기업 스스로 자기논리에 빠진 과도한 옹호는 극단적인 비판자의 목소리에만 주목하면서 생기게 된다. 대기업에 대한 비판이 몰아치는 이 시기에 다수 침묵자들의 속내를 꿰뚫고 대화의 장으로 그들을 이끄는 사회적 소통에 집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내부 구성원들과의 소통이다. 조직 내 수평적 정보공유, 소통 불가침의 영역이 존재하는 관행 개선과 권위적인 내부 소통문화,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대기업에 대한 이성적 논의가 감성적 논란을 대체할 것이고 체념과 무관심보다는 발전적 비판과 제언도 가능해질 것이다. 이러한 소통이 대한민국 대기업의 미래 사회적 자본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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