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무슨 생각으로 저런 외진 곳에 원룸을 지었을까, 납득이 가지 않아요."
서울 신촌 D부동산 김모(54)씨는 최근 동료 공인중개사들로부터 난처한 부탁을 종종 받는다. 서울 변두리나 수도권 지역의 원룸 건물을 좀 팔아달라는 것이다. 김씨는 "신촌에도 텅 빈 원룸이 많은데, 수요가 거의 없는 지역에 우후죽순 들어선 소형임대주택이 통째로 매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원룸, 오피스텔 등 서울의 소형임대주택 시장이 포화상태다. 2009년 838가구에 불과하던 도시형생활주택(정부지원이 들어간 원룸)은 지난해 3만4,103가구로 40배 폭증했다. 누가 와서 살까 싶을 정도인 산꼭대기에도 빽빽이 원룸이 들어선 형국이다.
6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만 도시형생활주택 8만 가구, 오피스텔 3만 실이 전국에 쏟아질 예정이며 대부분이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있다. 설상가상 단독주택을 원룸으로 불법 개조한 건물까지 합치면 소형임대주택 공급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 같은 원룸 과잉공급은 정부가 부추긴 측면이 크다. 정부는 2009년부터 늘어나는 1, 2인가구를 위한 주택 공급을 늘리려고, 주차장 확보 기준 등 건축규제 완화, 저금리 자금 지원을 앞세워 원룸 건설을 유도했다. 때마침 부동산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면서 아파트의 투자가치가 떨어지자 소형임대주택은 유망한 수익형부동산으로 떠올랐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부동산 자금이 정부의 지원에 기대 원룸으로 쏠리면서 현재의 공급과잉이란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최근 도심이나 주요 상권에서도 주인을 찾지 못한 빈 방이 늘어나는 지경이지만 원룸 소형임대주택 공급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송파구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오피스텔도 임대사업용 주택으로 등록할 수 있게 되면서 매일 20명 가까이 주택임대사업자로 등록한다"고 말했다. 마포구 관계자 역시 "월세 수익을 기대하고 도시형생활주택을 분양 받는 사람이 많아 임대사업자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전했다.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면 가격이 떨어지는 건 당연지사. 업계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원룸 투자는 끝물일 가능성이 높아 무턱대고 투자에 나섰다간 큰 코 다친다"고 경고했다. 오피스텔 임대수익률은 지난해 이후 흔히 마지노선이라 불리는 6%대가 무너졌고, 최근엔 5.5% 밑으로 떨어질 기세다. 본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다.
종로구 충신동 S부동산 이모(69)씨는 "3년 전만해도 원룸이 전혀 없던 동네에 최근 300실 가까이 생겼고, 그 여파로 월 임대료가 10만원 정도 떨어졌다"고 했다. 서울시립대 앞의 M부동산 관계자는 "몇 년 새 원룸으로 개조한 단독주택과 도시형생활주택이 40여 채나 들어서면서 원룸 건물마다 빈방이 늘고 있다"며 "2년 전엔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소형임대주택이 경매 물건으로 속속 등장하는 것도 이상신호다. 부동산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 하유정 팀장은 "예전엔 경매시장에서 원룸을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최근엔 매물로 나온 지방 원룸 건물들이 종종 눈에 띈다"고 설명했다. 실제 올해 1분기 경매시장에 나온 고시원, 도시형생활주택 매물은 25건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2배 늘었다.
원룸 투자가 자칫 '묻지마' 투자로 변질되는 것도 우려된다. 공인중개사 이모(46)씨는 "원룸을 지어놓고 지속적으로 투자를 하지 않으면 세입자들은 금방 시설이 나은 주변의 신축 원룸으로 옮긴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공급과잉 탓에 임대수익률이 크게 떨어진 상황이라 특히 단기간에 원룸이 많이 늘어난 지역은 투자를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