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신축원룸은 넘쳐나는데… 세식구 살 집 없어 이사는 꿈도 못 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신축원룸은 넘쳐나는데… 세식구 살 집 없어 이사는 꿈도 못 꿔"

입력
2013.05.06 18:39
0 0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낙산 자락인 이화동 고개에 오르자 종로와 명동 일대에 빼곡히 들어찬 고층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남산타워와 어우러진 서울 시내는 관광엽서에 나올 듯한 풍경이지만 정반대쪽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고갯길 양쪽에는 언제 지었는지도 모를 허름한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석축 위에 들어선 주택 대부분은 정화조조차 없다. 이런 주택들 지붕 위로 전깃줄이 어지럽게 얽혀 있고 동네 곳곳의 가파른 계단으로는 짐을 든 노인들이 힘겹게 오가며 가쁜 숨을 토했다.

고갯길 위에 있는 집에 가기 위해 계단을 오르던 박모(45ㆍ여)씨는 아래쪽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두부 한 모 사려 해도 저 아래 가게까지 왕복 20분이 걸리는 불편한 곳이지만 형편이 안 돼 내려갈 수가 없어요."

박씨는 월세 40만원을 주고 이 동네의 방 2칸짜리 다가구주택에서 11년째 살고 있다. 주방은 따로 없고 화장실이라고 부르는 곳은 있지만 정화조가 없다. 장마철에는 동네에 진동하는 분뇨 냄새를 맡아야 하고, 겨울이면 아랫동네로 가기 위해 새벽부터 나와 눈을 치워야 한다. 박씨는 "초등학교 1학년 딸 아이가 이런 집에서 학교 다니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며 "우리 세 식구가 싸게 이사 갈 집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짐을 싸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씨의 바람은 점점 실현되기 어려워지고 있다. 월세 수익을 노린 원룸은 넘쳐나도 식구 서너 명이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은 갈수록 구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회사원 김모(31)씨가 지난해 말부터 전세로 사는 서울 마포구 신수동의 한 원룸도 2년 전에는 일반 주택이었다. 3층 주택의 각 층에는 방이 3개씩 있어 한 가구가 전세로 거주하기 알맞지만 집 주인이 방 3개에 각각 욕실을 만들어 3개의 원룸으로 쪼갠 것이다. 김씨는 "3가구가 9가구로 세 배 늘어나니 당장 주차공간이 문제라 골목은 차들로 뒤덮였고 자리를 못 잡은 차들은 이면도로에까지 주차를 한다"며 "친구가 사는 원룸은 주차장이 좁아 대기표를 뽑고 차 있는 입주자가 나갈 때까지 기다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주차 문제뿐만 아니다. 원룸의 폭발적 증가는 원룸에 거주하는 이들에게도 갖은 시련을 요구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소음과 환기 문제.

고향이 경남인 공무원 진모(29)씨는 대학에 입학한 뒤 지금까지 서울에서 원룸 5곳을 전전했다. 이 10년간 진씨는 호흡기 질환을 자주 앓아 한 번 기침을 시작하면 끝도 없이 기침을 해댔다. 병원에서는 "통풍과 습도 조절이 안 되는 좁은 원룸의 영향이 크다"는 설명을 들었다. 진씨는 "돌이켜보면 신축 원룸일수록 창문이 작아 살기가 더 불편했다"며 "환기가 안되다 보니 여름에는 습도 조절을 위해 에어컨을 끼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H원룸에 사는 회사원 김모(32)씨는 낮에는 어둠과 맞서고 밤에는 옆방 소음과 싸우는 생활을 4년째 이어가고 있다. 하나뿐인 손바닥만한 창문은 맞은 편 원룸과 맞닿아 대화가 가능할 정도다. 당연히 햇빛은 안 들어온다. 벽이 얇아서 가만히 있어도 옆 방 사람이 전화하는 소리까지 들린다. 김씨는 "주택이 아닌 제2종 근린생활시설로 건축허가를 받아 소음에 무방비"라며 "매일 미칠 지경이지만 딴 곳도 마찬가지라 위로하며 참고 산다"고 했다.

원룸의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이들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집값이다. 주머니 가벼운 젊은이들이 남의 간섭 받지 않고 제 한 몸 뉘일 곳은 그나마 원룸뿐인 게 현실. 1년 전 대전에서 올라와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원룸에 사는 간호사 김모(24)씨는 "사회 초년병에게 서울에서 마음에 드는 전셋집을 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소음에 시달리고 앞집과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불안한 생활이지만 경제적 문제 앞에서 이것저것 따지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런 틈새를 노린 원룸 시장이 최근 급격히 팽창했지만 동시에 자연도태도 진행 중이다.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한 원룸은 역세권 원룸에 밀리고, 오래된 원룸은 신축 원룸에 치이며 '원룸 공동화'라는 또 다른 사회문제를 낳고 있다. 지하철 4호선 이수역 부근 S부동산중개소 김모(52)씨는 "이 근처 3층 상가 주인이 쏠쏠하다는 소문을 듣고 2층을 원룸으로 바꿨는데 집 보러 오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며 "구식 건물인데다 시장통인 탓인데,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해 방을 빼달라고 요청하니 참 난감하다"고 말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