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과 대학생들에게 다 인기 높은 웹툰 은 인턴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장그래를 비롯한 20대 후반의 젊은이들은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 인턴일 뿐인데, '스펙' 뿐 아니라 벌써 대기업이 자기들 정규직사원에게 요구하는 마인드와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거나 또는 그러려고 분투한다. 과연 그게 바람직한지, 또 이 그리는 회사가 얼마나 현실에 가까운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대다수 대기업과 공공기관에 생겨난 인턴이라는 제도가 싸고 편하게 젊은이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제도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 착취의 명목을 '산학협동'이니 '스펙'이니 '현장실습'이니 치장하지만 듣기 좋은 허구라는 것도 알고 있다. 사실 모두가 알고 있다. 다만 그런 현실을 바꾸지 못할 뿐이고, 모든 '절대 갑(甲)'의 자리를 자본과 고용주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바깥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고생스런 인턴 생활을 몇 개월씩 하고 그냥 '버려진' 대학생들의 실화를 나도 여러 번 들었다. 이 세상에는 그런 이야기가 정말 셀 수없이 많을 것이다. 최근 편의점 학원 미용실 등에서 일하는 청년노동자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73%가 최저임금 4,860원보다 낮은 급여를 받고 시간외수당은 꿈도 못 꾼다고 응답했다.(노컷뉴스 2013.4.30) 청소년이나 학생들을 착취하고 인격을 침해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은 관행과 일상으로 만든 이 문화는 죄가 많다. 이런 일은 내 주변에도 널려 있다. 대학 조교들의 상당수는 사무직 풀타임 노동자가 하는 일을 똑같이 하지만, 아주 싼 임금을 받는다. 그 임금은 대개 장학금 명목으로 되어 있고 신분을 '학생'으로 분류해두었기에 근로기준법 바깥에 있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문제제기하거나 해결책을 찾고 싶지만, 젊은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업계에서 찍힐까봐"이다. 경험이 부족하고 아직 순진한 그들은 고용주나 어른들의 엄포나 술수에도 쉽게 진다. 기성세대의 죄가 정말 크다. 나 또한 공범인지 모른다. 이 사회가 누리는 번영은 여전히 부끄러운 갈취와 억압의 문화 위에 구축돼 있는 것이다. '싸움의 철학'과 기술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누가 대신 싸워주기란 매우 어렵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현실에서는 '미스김씨'가 없다. '미스김'은 모든 면에서 전지전능한 '자발적 비정규직'이다. 그녀는 겉으로는 까칠하지만 사실 속도 깊은 '진짜 동료'라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서 나설 뿐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충까지도 해결해준다. 그야말로 그녀는 '직장인'의 신이다. 이 인기 드라마는 잘 된 드라마의 원리를 충실히 구현하는 것 같다. 디테일이 살아있고 '현실'을 반영한다. 그를 통해 보통사람들의 원망을 담아내고 위로한다. 그러나 '레알' 세계에서는 전혀 불가능하며 기실 별로 위험하지도 않은 판타지에 불과하다. 드라마는 초과근무 정리해고 회식 시간외수당 생리휴가 등 노동자들이 늘 맞닥뜨리는 현실과 차별 전반을 문제 삼고 시원한 멘트를 날려주기는 하지만, 그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에 대해서는 말 못한다.
현실에서 '미스김' 같은 '직장인의 신'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제대로 된 노조뿐일 텐데, 많은 사람들은 노조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세상의 '을'들이 노조라는 미스김을 동료를 두지 못하는 것은, 권력자와 사장님들이 노조를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2012년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률은 1.7%, 정규직은 14%를 기록했다 한다. 나는 한국사회의 모순과 고통이 이 낮은 수치에 집약돼 있는 것 같다.
며칠 전, 각고의 노력 끝에 청년유니온이 드디어 전국 단위 법내 노조로 인정받게 되었다 한다. 젊은 비정규직 노동자나 아르바이트생을 주된 가입대상으로 하는 청년유니온 같은 노조가 30개, 50개로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 또 거기 강사나 조교들이 대거 가입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10,20대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과 대학이 훨씬 나아질 것이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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