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기고] 아버지는 복지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기고] 아버지는 복지다

입력
2013.05.06 12:00
0 0

지난 가을 북한산의 사모바위 근처에서 진돗개 한 마리가 맞은편에서 오던 애완견 시추를 무는 일이 벌어졌다. 시추의 주인 아주머니가 비명을 지르며 어쩔 줄 모르고 진돗개 주인은 미안해하는 중이었다. 그 때 옆에 있던 어떤 중년남자가 “그놈 참! 역시 진돗개는 다르네”라며 진돗개의 용맹을 은근히 칭찬하였다. 듣고 보니 그럴 듯해서 얼뜰결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남자는 시추의 또 다른 주인, 그 아주머니의 남편이 아닌가! 이 모순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까? 구경꺼리가 퍼즐맞추기로 돌변했다. 우리 일행은 어설픈 정신분석과 추리력을 총동원하였다. 나름의 결론은 가족의 관심과 사랑으로부터 멀어진 그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시추를 시기하게 되었고, ‘라이벌’을 혼내준 그 진돗개가 대견스러웠다는 것이다. 나름 점잖던 사오십대 아저씨들이 이 추론에 왜 이다지도 열을 올렸을까? 막걸리 한잔씩 걸친 이 시대 아버지들의 동병상련 때문이리라.

요즘 이렇게 적잖은 아버지들은 가족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신세가 되었지만, 한가로이 감상에 젖어있을 그들이 아니다. 월요일 아침의 무거운 현관문을 어김없이 열어젖히는 사람들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오늘도 아이들 등록금과 학원비를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겐 책임감있는 아버지보다 더 좋은 복지가 없다. 더욱이 아버지는 정부에 손벌리지도 않으니 이른바 ‘복지구멍’을 염려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가족들의 단합까지 북돋우는 일석삼조의 복지다. 복지국가의 정부가 아버지들을 도와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래서 아버지의 책임감을 높여주고 아이들의 삶에 아버지가 더 많이 참여하게 하는 정책적 발상이 필요하다.

유엔에서도 2011년 2월에 발간된 보고서에서 오늘날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아버지의 역할에 정책결정자들이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내와 두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취임선서를 하는 것처럼, 미국에서는 가장 공적인 순간에 가족이 등장한다. 그런데 ‘한’ 가족 한다고 믿고 있는 우리는 가족을 공(公)과 구별해야 할 사(私)쯤으로 치부한다. 이렇게 ‘가족’의 정책적 가치도 평가절하되는 실정이다보니 아버지의 가치를 고민하는 공직자와 정책은 더욱 드물다.

하지만 2011년 여름, 21명의 사상자와 200만 파운드의 재산손실을 내고 3,100명이 구속됐던 런던폭동은 아버지가 왜 필요하고 정부는 왜 아버지를 도와야 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당시 영국은 유럽에서 가족해체가 가장 심했던 나라였는데, 경찰조사에 따르면 폭동에 가담했던 청소년 대부분이 아버지 없이 성장했다고 한다. 결국 긍정적인 롤모델로 삼을 성인남자가 없었다는 사실이 폭동의 주요 요인이 됐다는 분석결과가 나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아버지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우선 복지프로그램을 짤 때 아버지를 격려하고 교육시키는 고민을 좀 해보자. 아버지들은 너무 바쁘니까 찾아가는 서비스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예비군교육과 민방위교육을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현재 예비군교육은 국방부가 정해주는 필수내용과 시간수 이외에는 사단장 재량으로 운용되고 있다. 또 민방위교육은 소방방재청의 교육편람에 따라 시군구에서 자체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따라서 교육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운용의 묘를 발휘하면 된다. 가족이 해체되어 노숙하거나 별거, 아니면 교도소에 있는 아버지들도 도와야 한다. 보호관찰소와 교도소에서 아버지교육을 필수 과목으로 넣고 대폭 늘려야 한다. 남성재소자들을 아버지역할에 눈뜨게 할 때, 교정효과가 가장 높다는 것은 선진국에서 이미 검증된 사실이다.

미국에서 홈리스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우리는 노숙자라 부른다. ‘노숙자’ 하면 어떻게 숙식을 제공할까를 고민하기 쉽고, ‘홈리스’로 부르면 어떻게 가정을 되살릴지 고심하기 쉽다. ‘노숙자’를 ‘가족을 되찾고 싶은 아버지’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한 때이다.

김혜준 아버지다움연구소(KACE) 소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