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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닮은꼴 흐루시초프와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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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닮은꼴 흐루시초프와 김정은

입력
2013.05.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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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 발사 계기로 무모한 호언장담과 협박 공세

취약한 개성공단 ‘볼모 전략’에 냉철한 대응할 때

1953년 소련 지도자가 된 흐루시쵸프는 ‘평화공존’을 표방, 서방세계에 기대를 안겼다. 그러나 1957년 스푸트니크 위성 발사에 성공한 뒤 표변한다. 그는 탄도미사일 경쟁에서 한발 앞선 것을 과장해 “자본주의 국가와의 힘의 균형이 역전됐다”고 호언장담했다. 이어 전후 질서를 바꾸려는 대담한 공세에 나섰다.

첫 표적은 서방 전승국과 나눠 관할하던 독일 베를린이었다. 흐루시쵸프는 1958년 11월 베를린 분할 협정을 무효로 선언, 서베를린의 미 영 불 3개국 주둔군을 6개월 안에 철수시킬 것을 요구했다. 유럽의 역학관계를 뒤흔드는 공세였다. 베를린을 볼모로 삼은 것은 동독 안에 섬처럼 고립된 취약함을 노렸다. 흐루시쵸프는 뒷날 자서전에서 “서베를린은 미국의 발끝에 난 물집이다. 미국에 고통을 주고 싶을 때마다 서베를린 통로를 막으면 됐다”고 자신의 전략적 선택을 자랑했다.

소련의 공세는 ‘핵전쟁 공포’를 불렀다. 냉전 대치 상황에서 힘을 겨루다 보면, 자칫 무력 충돌과 핵전쟁에 이를 것이란 우려가 컸다. 이 때문에 서방 일각에서는 2차 대전 전 나치 독일에 대해서와 같은 유화론이 제기됐다.

혼돈 속에서 서방의 대응을 이끈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둘 다 군인 출신이었다. 쉽게 강경론에 기울 만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소련의 위성 발사가 곧장 탄도미사일 위협에 이르지는 않으며, 미국의 군사력이 여전히 우세하다고 자신했다. 또 흐루시쵸프의 ‘벼랑 끝 전술’의 주된 목적은 경제 개혁 등 내부 변혁에 긴요한 대외 여건을 확보하려는 시도라고 판단했다. 드골도 취약한 소련 체제의 불안이 커지면서 대외적 위협에 매달린다고 보았다.

아이젠하워는 여론을 진정시키면서 냉철하고 유연한 외교 군사적 대응에 집중했다. 소련의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고 서베를린 주둔군을 증강하면서도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동시에 흐루시쵸프와의 물밑 외교와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으로 타협적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서베를린의 지위에 근본적 변화는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흐루시쵸프는 1960년 5월로 예정된 4강 정상회담 2주 전, 미국의 U-2 첩보기를 격추시켜 정상회담을 무산시켰다. 또 최대 규모 핵실험과 함께 “핵폭탄 몇 발이면 영국과 프랑스를 초토화할 것”이라고 협박했다. 이어 1961년 8월 베를린 장벽을 구축한다. 그러나 장벽 구축은 3년에 걸친 협박과 ‘최후통첩’으로 점철된 ‘베를린 위기’의 종식을 의미했다.

흐루시쵸프는 1963년 쿠바 미사일 사태로 반전을 꾀했으나 케네디의 단호한 대응에 밀려 다시 실패한다. 이게 빌미가 돼 권좌에서 실각, 역사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 뒤 냉전 종식과 독일 통일 때까지 소련은 베를린 등 어디에서도 전후 질서에 정면 도전하지 않았다. 미국의 외교 원로 키신저는 1994년 저서 에서 “봉쇄정책은 결국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북한의 김정은도 지난해 위성 발사에 성공한 뒤, 과거 어느 때보다 황당한 호언장담 협박과 함께 현상 변경을 노린 공세를 펴고 있다. 한껏 과장된 ‘핵전쟁’ 위협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로서는 애초 가장 취약한 개성공단을 볼모로 삼는 것은 흐루시쵸프를 빼 닮았다. 그 주된 배경이 체제 내부의 취약성과 불안이라는 점도 그렇다.

우리가 북한을 상대로 무작정 냉전적 봉쇄정책을 따를 수는 없다. 그러나 무모한 협박과 도전에는 단호하면서도 냉철한 대응이 최선의 방책이다. 그게 개성공단과 같은 ‘발끝 물집’을 짓밟히는 고통을 무한정 되풀이 겪지 않는 길이다. 지금이야말로 얼마간 고통과 피해가 있더라도 인내하며 북한을 올바른 길로 이끌 때다. 한미 정상회담의 결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키신저는 “지식인과 논평가들은 위험 부담이 없지만, 정치가의 실책은 되돌릴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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