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서민들은 출세와 무병장수, 부귀영화, 사랑 등 소망을 민화(民畵)에 담아 집안 곳곳에 걸었다. 거기에서는 틀에 얽매이지 않는 기발한 상상력, 상징성과 자유분방한 채색, 화려한 장식으로 주류 회화에서는 접하기 힘든 풍요로운 조형세계를 만날 수 있다.
성보문화재단 호림박물관(관장 오윤선)이 10일부터 9월 14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분관에서 특별전 '상상의 나라-민화여행'을 연다. 이번 전시에는 박물관이 지난 30여년간 모은 민화 가운데 순수 전통민화로 분류할 수 있는 80여점을 엄선해 공개한다.
호림박물관은 토기나 도자기, 사경(寫經), 목가구 컬렉션으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특별전이나 상설전시에서는 이런 유물을 주로 선보였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이 품격 있는 박물관이 명품 민화도 적지 않게 보유한 사실이 처음 알려지게 됐다. 박물관 관계자는 "민화는 꿈의 세계, 상상의 세계를 화폭에 펼친 그림이라는 점에 주목해 전시를 기획했다"며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대중적인 미감을 맛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어떤 그림 앞에서 관람객은 명승지나 사냥터, 화사한 꽃, 새와 동물이 뛰노는 숲 속에 온 듯한 느낌을 맛보게 된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강과 바다, 책이 쌓인 사랑방으로 안내하는 작품도 있다.
전시는 크게 3가지 주제로 나뉜다. 제1부 '화폭에 자연이 들어오다'에서는 자연을 소재로 삼아 집안을 장식하고 각종 행사에 사용한 화조(花鳥), 화훼, 영모(翎毛ㆍ새와 짐승), 어해(魚蟹ㆍ바다동물)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모았다. 이 가운데 꽃과 새를 소재로 해서 함께 그려지는 화조도는 특히 부부가 서로 금실 좋게 지내면서 많은 자손을 낳고 행복하게 지내라는 의미가 담겨 있어 주로 여자들의 공간인 안방에 많이 놓여졌다.
'화폭에 책과 문제를 놓다'는 제2부에서는 책, 문방구, 각종 기물이 등장하는 책거리, 유교문자도와 백수백복도 등과 같은 문자도, 감모여재도 등이 자리를 함께 한다. '孝悌忠信禮義廉恥(효제충신예의염치)'처럼 유교 덕목을 활용한 문자도라든지, '壽(수)'와 '福(복)'자 같은 기복적 성격을 지닌 문자를 넣은 그림을 만날 수 있다. 당초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고 늘 책을 가까이 하라거나 유교 윤리적인 가르침을 따르라는 의미로 제작했던 이런 그림은 점차 민간으로 퍼지면서 기복적인 성격의 그림으로 변해갔다. 책을 가까이하고 유교적인 덕목을 따라 잘 살라는 의미에서 아이의 돌잔치에 사용되거나 사랑방에 많이 걸렸다.
마지막 코너인 '화폭에 옛 이야기를 담다'에서는 이상적인 경치를 그린 산수화와 고사인물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민화 산수도에서 애용한 소재는 소상팔경도. 금강산이나 관동팔경, 무이구곡 등을 활용한 작품도 많다. 조선 후기 산수화 전통에 바탕하고 있지만 방안을 장식할 수 있는 표현이 강조되면서 자유분방한 변형을 보여주고 있다. 인물 소재 민화로는 삼국지연의도, 구운몽도, 천세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았던 곽자의의 생애를 그린 곽분양행락도, 여러 명의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의 백동자도 등이 선보인다.
'민화'는 한국 미술과 공예에 애정을 표시했던 일본의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붙인 이름이다. 지금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 없을 한국 전통회화의 중요한 장르로 자리 잡았다. 이번 전시는 그 정수를 엿보는 자리다. 관람시간 월~토 오전 10시30분~오후 6시, 3,000~8,000원. (02)541-3525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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