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력과 지명도를 갖춘 주ㆍ조연급 연기자들이 악역을 통해 카리스마를 뽐내면서 드라마 시청률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에 악역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10% 중반의 시청률로 밤 10시대 1위를 기록하고 있는 MBC 월화 드라마 '구가의 서'에서 배우 이성재는 야망을 위해 살인은 물론 온갖 음모와 악행을 서슴지 않는 절대 악인'조관웅'역을 맞아 극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그는 영화 '공공의 적'이후 두 번째 맡은 악역에서 섬뜩한 연기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는데 성공했다. 같은 시간대에 경쟁하는 SBS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는 명품 조연으로 불리는 배우 성동일이 장옥정의 당숙인 야심가 장현 역을 맡아 연기력을 뽐내고 있다.
동 시간대 케이블 채널 tvN에서 방영하고 있는 '나인: 아홉 번의 시간 여행'에서는 중견 연기자 정동환의 악역이 또 일품이다. 병원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친구를 죽이는 것도 모자라 온갖 음모를 꾸미는 것은 물론 자신의 죄가 드러난 뒤에도 반성 따위는 하지 않는 문제적 인간 최진철을 연기한다. 이 드라마 게시판에는 '정동환은 극의 몰입도를 정점으로 가게 한 일등공신이다' '역대 최강 악역'이란 평이 이어지고 있다.
수목드라마와 일일, 주말 드라마에서도 악역들이 종횡무진이다. KBS 2TV 수목드라마 '천명'에서 배우 박지영은 자신의 아들을 보위에 올리기 위해 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비정한 여인 문정왕후 역으로 극의 중심에 서있다. MBC 수목드라마 '남자가 사랑할 때'에서 배우 김창훈은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타인을 파멸에 몰아 넣는 사채업자 구용갑으로 주인공 네 남녀의 애정구도를 휘젓는다. 또 MBC 일일 드라마 '오자룡이 간다'에서 탤런트 진태현은 매번 주인공 오자룡을 위기로 내모는 뻔뻔한 악역 진용석 역을 소화하고 있다. 시청률 30%대에 근접한 주말드라마 '백년의 유산'에서 중견 배우 박원숙은 자식을 위해 파렴치한 짓도 꺼리지 않는 방 회장 역으로 시청률 상승의 견인차 노릇을 하고 있다.
드라마 평론가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한국 드라마가 최근 일방적인 악역 보다는 개연성과 설득력은 물론 알 수 없는 매력까지 느낄 만한 입체적인 악역 캐릭터를 그려내고 있다"고 분석한다. 심리학자인 장근영 박사는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고통지수가 큰 한국 사회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역 연기와 이에 대한 응징의 과정은 시청자들이 카타르시스와 대리만족을 느낄 요소"라며 "호소력이 짙은 악역이 문화 흐름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악역에 대한 연기자들의 인식 변화도 이 같은 바람에 한몫을 하고 있다. 한국TV드라마 PD협회 전산 회장은 "몇 년 전까지도 주연급 연기자들 사이에서는 연기와 실제 이미지를 동일시 하는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악역 기피하는 현상이 뚜렷했다"면서 "최근들어 연기자들 사이에서도 악역이 시청자들에게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는 생각이 늘어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김대성기자 loveil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