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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가족 해체 시대의 ‘고령화가족’… 된장찌개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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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가족 해체 시대의 ‘고령화가족’… 된장찌개의 의미

입력
2013.05.0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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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둘러 앉아 엄마가 구워주는 삼겹살을 먹는다. “엄마가 구워주는 고기가 최고”라며 맛있게 먹는 이도, “왜 맨날 고기야”라고 툴툴거리는 이도 밥상머리에서 시끄럽다는 이도, 동생에게 괜한 시비를 거는 형도 있지만 숟가락이 향하는 곳은 두부와 파를 송송 썰어 넣어 구수한 된장찌개다.

찌개를 가운데 놓고 서로 나눠먹는 모습은 우리 고유의 모습 중 하나다. 외국의 혹자는 ‘비위생적’이라며 기겁을 할지도 모르지만 이는 가장 평범한 우리네 가족, 식구의 모습이다. 송해성 감독은 이 된장찌개를 주목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숟가락에서 감독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29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고령화가족’은 천명관 작가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서로 너무 다른 스타일을 가진 탓에 뿔뿔이 흩어져 살았던 한 가족이 다시 모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코믹 휴먼 드라마다. '파이란', '역도산', '우행시' 등을 연출했던 송해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가족 중 가장 고학력을 자랑하지만 데뷔작이 망하는 바람에 ‘잉여’감독이 되버린 인모(박해일), 할 줄 아는 건 싸움 밖에 없으면서 엄마 집에 붙어살던 한모(윤제문), 2번째 결혼에도 실패한 후 중학생 딸 민경(진지희)를 데리고 엄마 집에 들어와버린 미연(공효진), 그리고 묵묵히 이들을 품어주는 엄마(윤여정)까지. 극중 등장 캐릭터들은 한가족이라고 하기엔 색깔이 너무 달랐다.

등장 인물들은 끊임없이 다툰다. 인모는 폭력적인 한모에 암바를 당하기 일쑤고 미연은 그런 한모를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자 ‘대학 나온’ 인모에게 마지막 신뢰를 품고 있다. 민경은 당돌한 자세로 삼촌(한모, 인모)에게 맞섰다. 욕설이 난무하며 상극인 이 인물들이 한 집에 있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엄마의 존재 덕분이다.

가족이 다투지 않는 순간은 저녁식사 시간이 거의 유일하다. 가족들이 시끌시끌하게 싸울 때면 엄마는 “밥 먹자”며 이들을 말린다. 이들이 함께 받는 엄마의 저녁상은, 지글거리며 구워지는 삼겹살과 냄비에 담긴 된장찌개는 그래서 특별하다.

‘은교’의 노인 이적요에 이어 실패한 영화감독 인모로 분한 박해일은 특유의 찌질함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 잡는다. 송해성 감독의 과거이기도 한 그는 '고령화가족‘의 중심이자 사건을 이야기하는 화자다. 윤제문은 작품의 코미디를 책임진다. 캐릭터를 위해 13kg이나 몸을 불린 그는 늘어진 뱃살을 두드리며 폭력성과 남모를 고민을 담은 한모를 연기했다. 철없는 로맨티스트 미연의 공효진과 훌쩍 성장한 진지희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그간 보여줬던 이미지에서 탈피해 가족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엄마로 분한 윤여정의 존재가 눈에 띈다. 전형적인 어머니 상을 연기한 그에게서 ‘우리 엄마’의 향기가 난다.

하나의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의 동선이 재미있다. 좁은 엄마 집에서 치열하게 영역 다툼을 벌이는 캐릭터의 상태와 위치가 절묘하다. 다양한 색깔을 가진 인물들을 카메라 한 대로 잡아낸 송해성 감독의 고민이 느껴진다.

‘고령화가족’은 가족 해체 시대를 맞은 우리에게 ‘식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전한다. 새로운 가족과 마주 앉아 금방 끓인 라면을 후후 불어먹는 인모에게서는 어색함보다 편안함이 느껴진다. 송해성 감독은 아이러니로 영화를 채웠지만 그와 중에 느껴지는 편안함은 감독의 의도를 보는 이도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러닝타임 113분. 15세 이상 관람가. 5월 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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