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심리학계의 슈퍼스타인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는 2년 전 흥미로운 책을 하나 출판했다. 정도로 번역이 가능한 제목의 책인데,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전쟁을 통해 희생되는 인간의 수는 근대로 들어오면서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핵무기를 포함해서 파괴적인 무기체계가 고도로 발전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과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 월남전의 경험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는 우리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핑커 교수가 제시하는 방대한 자료에 따르면 단순히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의 수가 줄었을 뿐 아니라 살인, 고문 등 다양한 폭력적 행위가 근대에 접어들면서 급격히 줄었다.
지난주에는 학회 참석차 중국 난징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이나 중국인이 국부로 숭상하는 쑨원의 무덤이 있는 곳이고, 국민당의 수도였던 유서 깊은 도시이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가장 깊이 새겨져 있는 기억은 아마도 '난징대학살'일 것이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오래 전부터 중국 농업의 중심지로써 토양 생태학에 대한 방대한 연구를 수행한 연구 기관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학살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고 싶은 마음도 아주 컸다. 기념관의 다양한 전시물에 나타난 일본인의 잔혹함보다도, 이런 역사적 사실에 대해 '교육받은' 일본인들이 보이는 태도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만난 일본인들은 한정적이라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흔한 반응은 이러하다. '근현대사는 고등학교 3학년 마지막에 배우기 때문에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아 잘 모른다' '난징대학살의 학살자 숫자는 과장되었다' '한국은 내부의 정치적인 문제가 생기면 일본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등등이다.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전쟁에서 졌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을 갖도록 강요 받고 있다는 일본인들의 생각이다. 내 마음속의 질문은 이렇다. 역사를 꼭 시간 순서대로만 가르쳐야 하는가? 30만 명이 아니라 3만 명의 비무장 시민을 군인들이 학살하는 것은 괜찮은가? 피해자가 범죄를 신고한 의도에 따라 범죄 성립 여부가 바뀌는가?
앞선 책에서는 폭력이 감소하는 이유에 대해, 폭력을 제어할 수 있는 국가의 탄생, 계몽주의나 인본주의 등을 통한 대중의 교육과 계몽, 민주주의 제도의 확산, 더 많은 정보와 문화의 교류와 같은 사회적 진보를 들고 있다. 또한 개인의 심리적인 수준에서의 반응도 강조하고 있는데,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입'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남의 입장에서 아픔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은 생물의 진화과정에서 일어난 뇌의 놀라운 변화다. 그리고 이 능력은 다른 이의 고통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급 받을 때 가능하다. 일본인들이 말하던 '대동아 공영'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실현하려면, 한류 문화를 즐김으로써 가능한 것이 아니라, 난징을 방문하여 그들의 조상들이, 혹은 현재도 살아있는 평범한 나의 할아버지들이 도대체 무슨 짓을 했던가를 보고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함으로써 시작될 것이다. 일본은 아시아에 가장 먼저 사회문화적 진보와 근대화를 이루어 냈으며, 민주주의 제도의 확립에도 성공했다. 핑커의 책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폭력성을 제거할 수 있는 기반이 가장 튼튼한 아시아의 국가가 바로 일본이다. 이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에 대해 더 큰 반성과 자기 분석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난징대학살 기념관의 커다란 벽에는 살해당한 사람을 한자로 '遭難者'라 표현해놓고, 한글로도 '조난자'라 그대로 번역해 놓았다. 중국에서의 쓰임과 달리, 우리말에서 조난자란 그나마 구조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다. 이 표현보다는 아마도 '희생자'라는 말이 더 정확하리라. 희생이라는 단어에는 자신의 목숨을 던짐으로써 다른 사람에 무엇인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과거 일제의 침략으로 살해된 사람들의 죽음이 현재와 미래 동북아 국가들의 평화와 공동 번영에 기여한다면, 이들은 진정한 의미의 희생자이다. 그리고 이의 실현 여부는 전적으로 일본이라는 국가의 '감정이입' 능력에 달려 있다.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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