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지금 제 나이인 스물 네살 때 할아버지를 여의고, 가정의 생계를 위해 문학의 꿈을 버린 채 직업군인이 되셨습니다. 말로 가르치기 보다 늘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신 아버지를 따라 저도 군인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어버이날을 앞둔 지난 4일 오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지역사회교육회관 지하 소극장 무대. 여성가족부가 후원하고 KACE아버지다움 연구소가 주관한 '아버지 땡큐 콘서트'가 열렸다.
'아버지께 드리는 감사의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공군 제17전투비행단 소속 양창훈(24) 하사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렸다. 어느새 눈가는 촉촉해졌고 굵은 물방울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단정한 헤어스타일에 다부진 체격, 잘 다려진 제복을 입고 서서 편지를 낭독하는 양 하사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비슷한 복장과 용모의 중년 남성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양하사의 아버지 양하윤(49) 원사다.
양 하사의 편지는 이어졌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봉사활동 하는 노인대학에 몇 번 간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군복을 입었지만 TV에 나오는 어느 연예인 못지않게 정말 멋있었습니다. 아버지를 보며 저도 군인이 됐고 남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제5전술 공수비행단에서 30년 넘게 복무 중인 양 원사는 양 하사에게 군인으로서, 또 아버지로서 말이 아닌 행동으로 조언하는 롤모델이다. 2008년 삼육대 영문학과에 입학했던 양 하사가 공군 부사관을 선택하게 된 이유도 한 평생 군인으로서 성실했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자신이 보고 자란 아버지의 뒷모습을 따라가고 있는 그는 늠름한 5년 차 공군 부사관이 됐다. 양 하사는 "아버지가 평생을 바친 공군이 된 것도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눈물을 보인 것은 양 하사뿐이 아니었다. 아버지 양 원사도 아들의 편지 낭독을 들으며 눈가를 훔쳤다. 그는"아버지로서 평소에 아들에게 잘 해준 것도 없는데 부끄럽다"며 "어버이날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고 감격했다.
양 원사는 소속 부대원들에게 존경 받는 군인이다. 끊임없는 근무와 훈련 등으로 바쁜 생활 속에도 시간을 쪼개 부산에서 20년 넘게 노인대학을 운영하는 등 자원봉사에 적극적이다. 젊은 시절 문학도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부대원들을 위로하는 시를 쓰고 있다. 그의 시는 20년 이상 근무하다 전역하는 공군들에게 주어지는 기념물에 담긴다.
양 하사 역시 이런 아버지를 뒤따르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는 "군 심리상담가가 되기 위해 한양사이버대에서 심리상담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며 "봉사와 시로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 온 아버지를 따라 나 역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또래 군인들에게 위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선 아버지를 주제로 한 글, UCC, 사진 등 총 300여 편의 공모 작품 가운데 양 하사를 비롯한 40명의 작품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수상자들의 아버지와 가족 등 200여 명은 아버지에 대한 마음을 담아낸 작품을 보며 웃음지었고, 때로는 눈물을 흘렸다. 글 부문에서 '존경상'을 수상한 양 하사도 소리 높여 아버지에게 진심을 전했다. "아버지, 큰 아들 창훈입니다.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글ㆍ사진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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