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개헌 문제를 7월 참의원 선거의 쟁점으로 다루기로 하면서 일본 사회에서 개헌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다케자키 히로노부(竹崎博允) 일본 최고재판소 장관(대법원장)은 헌법기념일 66주년을 하루 앞둔 2일 정치권의 헌법 개정 논란과 관련해 "국민적 논의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사법부의 수장이 입법부 수장인 아베 총리의 헌법 96조 개정 추진에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다케자키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헌법은 모든 법의 기본이며 국가의 형태 그 자체"라면서 "헌법의 개정 여부는 국민적 논의에 맡겨야 하며 일본 미래의 바람직한 모습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이뤄진 뒤 결론을 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전문가는 "국회에서 다수당이 힘의 논리를 앞세워 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위험성을 사법부가 지적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정당과 언론도 자신들의 주장을 쏟아냈다. 자민당은 2일 담화를 내고 "국민 사이에 헌법 개정을 원하는 기운이 높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명당은 "전쟁 포기와 군대 보유 금지를 규정한 헌법 9조 1,2항을 모두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혀 1999년 이후 지속된 양당의 연립이 분열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진보 성향의 아사히(朝日)신문은 3일 사설에서 "개헌 발의 요건이 완화되면 헌법이 일반 법개정과 다를 바 없어 권력 견제를 할 수 없게 된다"면서 "헌법 9조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며 국제사회에 한 약속"이라고 강조했다. 헌법학자인 이시카와 겐지 도쿄대 교수는 아사히 기고에서 "헌법 개정권자인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개정 조건 완화를 추진하는 것은 축구 선수가 (골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오프사이드 규칙을 변경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게임에서 이기고 싶다는 이유로 게임의 규칙을 변경하는 것은 게임 자체에 대한 반역"이라고 비판했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개헌 발의 요건이 엄격하다는 아베 정권의 주장에 대해 "링컨 대통령은 노예 해방을 위해 의석 수 3분의 2 이상으로 돼있는 헌법을 고치지 않고 반대파 의원들을 만나 설득했다"고 강조했다.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讀賣)신문은 "개헌 논의의 근저에 일본인의 손으로 헌법을 만든 게 아니라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는 만큼 국민이 시대에 맞게 헌법을 개정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고 극우 산케이(産經) 신문은 "드디어 일본인의 손으로 헌법을 개정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고 반겼다. 여론은 현재 개헌 반대가 우세하지만 찬성 여론이 조금씩 많아지고 있다.
관련 전문가는 "자민당이 추진하는 헌법 개정 내용에 국익을 위해 국민의 권리 행사를 중단할 의무를 명시하는 등 독소 조항이 다수 포함돼있다"며 "향후 개헌 논의 과정에서 보수와 진보 세력의 갈등이 더욱 첨예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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