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하위주체'로 번역되는 '서발턴(Subaltern)'은 이탈리아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학자 안토니오 그람시가 무솔리니 정권의 눈을 피하기 위해 옥중에서 쓰기 시작한 말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용어인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 대신 쓰인 이 말은 자본제 생산체제가 간과한 농민계급을 포함하며 소외된 자를 일컫는 광범위한 용어로 의미가 확대됐다.
인도 출신의 이론가 가야트리 스피박은 페미니즘과 포스트구조주의 사유를 덧붙여 이 말을 갱신한다. 인간 인식을 지배하는 언어는 이 체계를 만드는 '주체'와 언어의 재현 '대상'으로 구성되며 서발턴은 언어 대상에 머물 뿐 언어 주체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발턴은 그들의 처지를 표현할 언어를 갖지 못하며, 설사 표현하더라도 주체는 이 표현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다. "그들(프롤레타리아)은 하나의 계급을 형성하지 않는다"는 마르크스의 을 인용하며, 스피박은 다양한 서발턴 중에서도 특히 제 3세계 여성이 대표적인 서발턴이라고 지목한다.
1988년 출간된 논문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는 인도 비밀 독립운동 단체의 조직원이었지만 정치적 요인을 암살하라는 임무를 이행하지 못한 채 자살한 부바네스와리 바두리라는 여성의 일화를 통해 서발턴 개념을 설명한다. 이 여성은 자신의 자살이 불륜으로 인한 임신 때문이 아님을 드러내려고 생리 중에 자살했다. 하지만 그녀의 메시지를 당대 사람들도, 후대인들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스피박은 이 사례를 제시하며 "서발턴은 말할 수 없다"고 통탄하며 지식인들은 서발턴이 자신의 언어를 갖도록 끊임없이 부추기고 도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간은 이 논문에 영향 받은 학자들이 2002년 개최한 동명의 학술대회 결과를 묶은 것이다. 스피박이 이 논문에서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이 글이 준 충격은 무엇인지, 이 글 이후 스피박의 작업이 어떤 궤적을 그려왔는지, 스피박의 문제의식이 다른 분야에 어떻게 연결되고 확장되었는지를 밝힌다.
스피박은 1988년 이 글을 발표한 이후 서발턴, 나아가 타자를 이해하고 관계 맺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리투 비를라의 '포스트식민 연구', 드루실라 코넬의 '인권의 윤리적 긍정'은 이런 과정을 소개한 글이다.
인도 서발턴연구회의 동인 파르타 차테르지는 '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에 관한 성찰들'이란 글에서 스피박의 글 덕분에 서발턴연구회의 주제와 연구 방법이 긍정적인 변화를 겪었다고 회상한다. 라제스와리 순데르 라잔은 '죽음과 서발턴'에서 여성이 억압받는다는 단순한 관점이 아니라, 더 폭넓은 젠더의 차원에서 인식론적, 역사적으로 서발턴 여성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다고 평가한다.
스피박의 글을 주춧돌로 작금의 자본주의 체제를 분석한 글도 있다. 펭 치아는 서발턴 개념을 통해 저개발 국가들이 선진국으로 가사 도우미를 송출하는 국제 재생산 노동분업 현장을 추적한다. 진 프랑코는 '서발터니티로부터 이동하기'에서 라틴아메리카 토착민 여성들의 관습을 분석한다.
스피박 역시 이들의 글에 화답해 1988년 발표한 글을 대대적으로 수정한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를 책 첫머리에 실었다. 20년여 전 서발턴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 '서발턴 되기'를 희망했던 스피박은 최근 글에서 이를 포기했다고 고백한다. 일찍이 유럽에서 교육받은 자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온전한 제3세계 서발턴 되기가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 고민은 주체(제 1세계 지식인)와 대상(서발턴), 자신과 타자 사이의 거리를 인정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한다.
책의 마지막 5부인 '응답 : 뒤를 돌아보며, 앞을 내다보며'에서는 자신의 사유를 압축적으로 소개하며 이 젊은 학자들의 글에 우회적으로 응답한다. 신자본주의 사회에서 서발턴이 점점 더 늘어나 2010년 월가시위에서 드러나듯 99%의 사람이 서발턴이 되고 있다는 것이 요지다. 계급, 국적, 젠더, 인종 등 다양한 차원의 서발턴들이 있음을 환기시키면서, 지식인과 서발턴들이 이 목소리를 듣고, 응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를, 아래로부터의 교육을 통해 이 능력을 증대시키기를 요청한다.
해체론, 포스트식민주의,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문화연구 이론이 복합적으로 연계돼 있는데다 논리 도약과 유추가 반복돼 읽기 만만치 않다. 등 스피박의 책을 다수 번역한 태혜숙 가톨릭대 교수가 옮겼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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