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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의·인권 최후의 보루에서… 연방대법관 35년 산증인의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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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의·인권 최후의 보루에서… 연방대법관 35년 산증인의 회고록

입력
2013.05.0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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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여러 책무 중 연방대법관을 지명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0년 6월 저자인 존 폴 스티븐슨 연방대법관이 퇴임하자 후임 대법관을 지명하면서 한 말이다. 이 말에서 연방대법관의 지위와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실이 드러난다.

9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되는 미국연방대법원은 미국 헌법의 최종 해석자로, 미국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최후 보루다. 판결 하나하나가 미국 정부와 사회의 앞길을 알려주는 등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 연방대법원의 역사가 곧 미국의 역사'라는 말까지 생겼다.

저자는 1975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 때 연방대법관에 임명돼 90살이 되던 2010년까지 35년간 재직한, 그야말로 미국 사법 역사의 살아있는 증인이다. 그는 동성애자, 낙태 권리를 옹호하고 사형제도를 위헌으로 보는 진보 성향의 대법관이었다. 그는 이 책에서 존 제이 초대 대법원장부터 지금의 존 로버츠 17대 대법원장까지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연방대법원 역사를 개관하고, 230여년의 미국 역사를 뒤바꾼 중요한 판결과 뒷이야기를 통사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연방대법원이 처음부터 민주주의와 인권을 신장하고 사회 갈등을 조정하는 '정의의 사도'는 아니었다. 1857년 노예는 시민권을 가질 수 없다고 판결한 데 이어 1896년 흑인과 백인의 분리교육을 '분리하되 평등한(separate but equal)'이라는 궤변으로 정당화했다. 20세기 초반 산업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노동권 주장을 묵살하고 대기업과 독점자본의 이익을 옹호하며 기업의 방패막이가 되면서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하지만 1950년대 진보적인 얼 워런 14대 대법원장이 취임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정부의 권력과 행위를 제한하는 판결이 나왔다. 흑백 분리교육을 평등권 위반으로 선언한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판결(1954년)을 시작으로, 불법적으로 취득한 증거를 재판에서 인정하지 않은 맵(Mapp) 대 오하이오 사건(1961년), 피의자에게 묵비권을 부여하고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알려줘야 한다는 미란다 원칙(1966년) 등 미국 역사를 바꾼 굵직굵직한 판결이 연이어 나왔다.

이런 진보적인 흐름은 1986년 윌리엄 렌퀴스트 16대 대법원장이 취임하면서 제동이 걸렸고, 그 이후 연방대법원은 보수의 길을 걷고 있다.

이 책은 피의자의 권리, 평등권, 낙태권, 동성애, 소수자 우대 정책 등 미국 역사상 논쟁이 됐던 주요 사안의 판결 흐름은 물론 미국 사회를 좀더 깊숙이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는 길잡이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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