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4만원. 한달 내내 무너질 듯 위태로운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여공들이 받는 급여다. 운이 좋아 더 받는다면 6만원 정도. 지난달 24일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의 의류공장이 붕괴돼 최소 400여명이 사망한 사건은 이들이 만든 옷을 싼 값에 사는 전세계 소비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다. 소비자들이 누리는 값싼 옷과 거대 의류브랜드들의 막대한 이익이 어떤 희생에서 오는지 경로와 뿌리가 극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돌아보게 하는 방글라데시의 현실은 세계 소비자들에게도 분명 남의 일이 아니다.
시신이라도 건지려 투신한 여공
지난해 11월 24일 방글라데시 다카 외곽 타즈린 의류공장에서 일하던 수미 아베딘(24)은 공장 3층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1층에서 화재가 발생, 9층 건물 전체로 불길이 번져가는데도 출입문이 하나도 없었다. 공장주가 비상계단의 출입문을 모두 봉쇄하고 1층 출구를 통해서만 출퇴근하도록 해 놓았기 때문이다. 아베딘은 투신한 이유로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이 내 시신이라도 발견해주길 바라서였다”고 말했다. 아베딘은 팔과 다리만 부러진 채 다행이 목숨을 건졌지만, 112명의 동료 노동자들은 건물 밖으로 나오지 못한 채 숨졌다. 아베딘은 미국 시애틀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또 불이 날까봐 다시 공장에서 일하기가 두렵다”고 말했다. 300만명이 넘는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노동자들이 늘 안고 있는 불안감은 과장이 아니다. 2005년 이후 1,000명이 넘는 의류공장 노동자들이 화재와 건물 붕괴로 사망했다. 2006년 이후 화재로 사망한 의류공장 노동자만 600명이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목숨 걸고 공장에서 일하는 현실
매리나 카툰(21)은 지난달 24일 무너진 의류공장 건물 더미에서 구조되기까지 나흘간을 버텼다. 8층 건물의 의류공장 라나플라자 건물이 붕괴될 때 카툰이 미처 피하기도 전에 천장이 무너져 덮쳤다. 다섯 달 전 112명의 목숨을 앗아간 다카 외곽 사바르 공단에서 또 다시 발생한 이 비극으로 최소 413명이 숨졌다. 사바르 공단은 습지에 위치해 건물들의 기반이 약하다.
카툰은 큰 기계 옆에 쭈그리고 몸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는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죽음이 찾아오기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했다. 옆에는 죽은 동료의 시신이 있었고, 함께 잔해 속에 갇힌 여성은 “나를 내 아들에게 데려다 달라”고 울부짖으며 카툰을 물어 뜯는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 그는 건물 붕괴조짐이 있었는데도 다시 건물에 들어가 일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관리자들은 건물로 들어가서 일을 하지 않으면 월급을 주지 않겠다고 했고, 이 과정에서 말싸움이 오갔다. 그렇게 다시 들어간 노동자들은 주검으로 발견됐다.
노조 추진한 노동자는 살해돼
지난해 4월 방글라데시 아슐리아 지역에서 의료공장 노조 조직을 추진하던 아미눌 이슬람이 변사체로 발견됐다. 시신에는 고문당한 흔적이 역력했다. 유명 의류브랜드인 갭, 타미힐피거 등의 카고 바지와 폴로 셔츠를 하청받은 공장에서 일했던 그와 동료 노동자들은 체불임금, 부당한 대우 등으로 고통 받았다. 이슬람은 동료들의 권익을 위해 노조 조직에 앞장섰다. 이 때문에 전화는 도청당했고, 경찰들은 수시로 그를 조사했다. 정보기관 요원들에게 납치돼 폭행당하기도 했다. 당국은 그에게 “노동자들을 위한 그의 행위가 의류수출이 견인하는 방글라데시의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고 협박했다. 뉴욕타임스는 “이슬람의 사망이 노조 조직화 때문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이슬람의 활동이 방글라데시 정권의 이해와 배치됐던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싼 노동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방글라데시는 중국에 이어 세계 의류 수출 2위국이다. 거기에는 무노조 정책이 자리잡고 있다. 최저임금이 월 37달러에 불과한 방글라데시에는 사실상 노조가 존재하지 않는다.
당국의 인식전환이 우선돼야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붕괴 사건이 발생한 후 현지 공장에서 의류 제품을 수입하던 캐나다 의류업체 조프레시 등의 브랜드가 유족에게 직접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방글라데시 고등법원은 붕괴 사고가 일어난 8층 건물의 소유주 모하메드 소헬 라나의 재산을 즉각 몰수하라고 정부에 명령했다. 앞서 건축물 불법증축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라나는 지난달 28일 국경을 넘어 인도로 도주하려다 당국에 체포돼 다카로 압송됐다. 방글라데시 현지에서는 건물주의 사형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집회가 열렸다.
사건은 법적 수순을 밟고 있지만 방글라데시 정부 정책의 일대 전환이 없이는 근본적인 해결은 요원하다. 검색하기">방글라데시 정부는 자국 내 모든 의류공장에 대해 안전진단을 하겠다?결정했지만, 노동권익 향상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것은 국제사회의 압박과 기업 및 소비자들의 윤리 의식이다. 유럽연합(EU)은 방글라데시 정부에 노동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관세특혜를 철회하는 등 강력 대응하겠다고 밝혀 노동자들에게 힘을 보탰다.
검색하기">이탈리아 베네통은 붕괴사고가 발생한 업체와의 납품계약을 부인했다가 뒤늦게 인정했다. 납품 계약을 맺어온 검색하기">스페인 망고, 검색하기">네덜란드 C&A, 미국 월마트 등도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아베딘은 최근 미국에서 방글라데시의 노동현실을 알리는 투어에 참여했다. 그와 대화를 나눈 미국인 라체 지아드는 “내가 이들의 현실을 바꿀 수 있는지 방법을 알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저임금으로 생산되는 브랜드 옷의 매입을 보이콧하는 것이 이런 소비자 운동의 첫걸음이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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