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잘 쓰는 말은 아니지만, 한때 우리는 '이웃'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다. '이웃'이라는 말은 대체로 이웃사람, 이웃집, 이웃마을처럼 근린의식(近隣意識)을 갖는 범위의 사람이나 지역공동체를 뜻하지만,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이웃사촌'이라는 말처럼 인간적 거리의 가까움도 포함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아래윗집을 가리켜 '이웃'이라는 말 대신 옆집, 윗집이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이웃'에서 사회적 거리의 가까움은 사라지고 물리적 거리만 남은 말이 옆집, 윗집이다. 아파트 생활을 하는 현대인에게 '이웃'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인간적인 친밀감을 표현하지는 못하고 있다.
근래 들어 층간소음으로 인한 강력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진다. '가까운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낫다'는 속담까지 있는 마당에 어쩌다 지금 이런 일까지 일어나게 된 걸까?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공동주택 거주인구 비율은 2005년 57.5%에서 2010년 62.6%에 이르고 있다. 이에 따라 공동주택 생활에서 발생하는 층간소음으로 인한 민원, 분쟁이 최근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3월 개설한 한국환경공단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는 올해 4월말까지 무려 1만2,000여건의 상담이 접수됐다. 앞으로 공동주택 거주비율은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고, 이미 층간소음은 우리 생활환경 속 가장 민감한 문제로 자리 잡았다.
근본적으로 층간소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층간소음이 발생하지 않는 아파트를 지으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에서는 주택법을 개정하고, 주택건설기준을 강화하는 등의 대책 마련에 몰두하고 있다.
현행 주택건설기준은 경량충격음 58㏈ 이하, 중량충격음 50㏈ 이하 소음 기준을 만족하거나 콘크리트 두께 210㎜ 이상을 선택적으로 만족시키면 되지만, 내년부터 시행될 새 주택건설기준은 이 두 기준을 모두 충족하도록 강화됐다.
문제는 기존에 지어진 공동주택의 중량충격음이다. 경량충격음은 의자를 끌거나 장난감을 움직이는 소리 등 비교적 가볍고 딱딱한 충격에 의한 바닥 충격음으로서 충격력이 약하고 음향 지속시간이 짧아 소음방지 매트나 완충재 사용으로 소음을 많이 줄일 수 있다. 하지만, 중량충격음은 어린이가 뛰어 노는 것과 같이 무거운 충격이 바닥에 가해질 때 아래층에 전달되는 저음역의 충격음으로서 저감이 매우 어려워서 기존에 건설된 주택에서 계속 문제가 되고 있다.
층간소음 분쟁원인 중 아이들 뛰는 소리와 어른 발걸음 소리가 73%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사자끼리의 해결보다는 제3자의 중재가 필요하다. 분쟁현장을 가보면 공동주택 거주자간 '이 정도의 생활소음은 이해해줘야 하지 않느냐'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더 조심해서 살아야 한다'는 주장이 서로 대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로 일리 있는 주장으로서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서는 전문가 상담과 소음 측정을 통해 이런 대립을 조정해 분쟁을 해결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이웃사촌'으로서의 공동체 의식회복이다. 우리가 서로 '이웃사촌'이었던 때를 떠올려 보자. 아이가 많은 집은 시끄럽다라는 인식이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셋방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아이들을 시끄럽지 않게 조심시켰고, 집주인은 조금 시끄러워도 이해하면서 사이 좋은 이웃 관계를 유지했던 것 같다. 바닥과 천정을 공유하고 있는 공동주택에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봄으로써 서로의 불편을 해결하는 관용의 미덕이 있었다.
최근 몇몇 아파트단지를 시작으로 층간소음 분쟁을 만남과 대화를 통해 자체적으로 해결하고자 잇따라 자치조직과 규약을 만들고 있다.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 2012년 통계자료에 의하면 만남과 대화가 이루어졌을 때, 이웃 간 분쟁이 65% 해소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마음가짐에 따라 소음도 얼마든지 극복될 수 있는 문제임을 증명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우리, 다시 가까운 이웃사촌으로 돌아가자.
박승환 한국환경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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