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신 마비로 뛰지 못하는 지훈이는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가 좋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하얀 도화지 위에 오색 연필로 차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때만큼은 달리고, 또 달리는 상상을 할 수 있어서다.
안성에 사는 김지훈(13ㆍ대덕초 6년)군이 그 동안 모터쇼에 나온 컨셉트카를 따라 그리거나 새로 디자인한 자동차 그림만 스케치북으로 20여권 분량. 돌아다닐 수 없어 주로 인터넷 자료를 보고 그림을 그린 김 군은 “멋진 차를 디자인하면 아픈 것도 잊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 군의 꿈은 자동차 디자이너다.
1일 휠체어에 앉은 김 군은 엄마 한창일(53)씨의 손을 꼭 잡고 경기 평택의 쌍용자동차 디자인센터를 찾았다. 어린이 날을 앞두고 근이영양증을 앓는 김 군의 딱한 사연을 들은 쌍용차와 이 회사의 자동차 디자이너 김혜림(32) 연구원이 멘토로 나섰기 때문이다. 근이영양증은 근육이 서서히 마비돼 심장병 등 합병증을 유발하는 희귀질환이다.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디자인센터 곳곳에 걸려 있는 다양한 자동차 디자인을 본 김 군의 얼굴에는 이내 화색이 돌았다. 펜을 쥔 오른손을 왼손으로 받친 모습이 힘겨워 보였지만 이날 김 군은 디자인 전용 프로그램으로 자동차를 그리고, 디자인된 컨셉트카에 파랑, 노랑 색칠도 했다.
“스케치북이 아니라 전용 펜으로 컴퓨터 모니터에 자동차를 그리고 색칠하는 게 신기해요. 화면이 미끌미끌 해서 조금 힘들었지만요.”
수줍은 듯 조용하게 말하는 김 군에게 김 연구원은 조언도 잊지 않았다. “자동차를 잘 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달리는 동물은 자동차 디자인에 영감을 주니까 많이 그려보는 게 좋아.”
사춘기에 접어들어 낯을 많이 가리던 김 군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휠체어 타고 다니는 것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게 싫다”면서 밖에 나가길 꺼려하던 김 군은 언제 그랬냐는 듯 연구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연신 밝게 웃었다.
김 군은 8살 때부터 휠체어를 탔다. 다리 근육이 마비돼 걸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어머니 한씨는 “6살 때 갑자기 계단을 오르지 못해 병원에 갔더니 성장통이라고 해서 걱정하지 않았는데 이듬해 근이영양증 진단을 받았다”고 말했다. 팔의 근력도 약화돼 지난해부터는 숟가락을 드는 것도 힘겹고, 양치질도 겨우 한다. 한씨는 “그래도 매일 색연필은 놓지 않으려는 게 기특하고 또 안쓰럽다”고 말했다.
마땅한 치료약도 없지만 기초생활수급자인 한씨가 김 군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장기 기능에 이상 없는지 알아보려고 초음파 검사라도 한 번 할라치면 30만원을 훌쩍 넘겨 가계에도 큰 부담이다.
엄마가 끌어주는 휠체어에 앉은 김 군은 “선생님처럼 멋진 차를 많이 만들고 싶다”고 좋아했다. 김 군이 생각하는 ‘멋진 차’는 행복이 가득한 차다. “가족이 타는 승용차를 디자인 하고 싶어요. 그 차로 온 가족이 행복하게 여행 갈 수 있게….”
쌍용차는 이런 김 군을 위해 지속적으로 멘토링을 해줄 계획이다.
평택=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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