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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나라 미국에도 '食人의 시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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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나라 미국에도 '食人의 시대'가 있었다

입력
2013.05.02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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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와 몸을 분리한 뒤 두개골을 갈랐다. 소를 도축할 때처럼 정강이뼈를 단숨에 부러뜨렸다."

17세기 초 미국에 정착한 영국인들이 인육을 먹은 흔적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이 버지니아주에서 발굴된 14세 영국인 소녀의 뼈를 분석, 초기 이주민들이 시체를 먹은 증거를 찾아냈다고 2일 보도했다.

연구진이 '제인'이라고 이름 붙인 소녀의 뼈는 지난해 제임스타운 쓰레기장에서 도살된 동물의 뼛조각들과 함께 발견됐다. 제임스타운은 미국으로 이주한 영국인들이 처음 발을 디딘 곳이다. 1609년 겨울 이 지역엔 지독한 혹한과 가뭄이 몰아 닥쳤는데 이듬해 봄에는 거주민 300명 중 60명만이 살아 남았다. 당시 굶주린 이주자들이 개 뱀 쥐뿐 아니라 시체까지 먹어 치웠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확인된 적은 없다. 따라서 이번 연구 결과는 미국의 초기 식민지에서 인육을 먹은 최초의 물리적 증거로 평가된다.

식인의 흔적은 두개골과 하퇴골에서 발견됐다. 연구에 참여한 인류학자 더글라스 오슬리는 "이마와 두개골에 칼로 찍히고 잘린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며 "두개골 옆에 구멍을 낸 흔적도 있는데 뇌를 파먹기 위한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정강이뼈에도 도끼와 식칼로 내리친 자국이 숱하게 나 있었으며 살이 인위적으로 발려진 흔적이 나왔다. BBC방송은 "17세기의 동물도축 방식과 비슷하다"고 전했다.

연구진은 유골 절단면에서 머뭇거린 듯한 얕은 상흔이 많이 남은 것으로 보아 전문 도축업자가 아닌, 당시 생존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여성이 도축을 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연구진은 부서진 두개골을 가지고 디지털 복원 작업을 통해 제인의 얼굴을 재현하는 데도 성공했다. 소녀가 사망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연구자들은 유골의 영양 상태가 좋은 것으로 미뤄 부유한 식민지 개척자의 딸이나 하녀이며 1610년 1~2월 사이 굶주림 또는 질병으로 죽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제인이 숨진 '굶주림의 시대'는 미국 식민 역사에서 가장 참혹한 시기로, 이주자들을 둘러싼 흉흉한 소문이 많았다. 당시 기록 중에는 남편이 부인을 죽여 소금으로 간을 했다거나 주민들이 이유 없이 실종됐다는 등의 내용이 있다. 연구진은 "당시 주민들이 먹은 시체가 제인 뿐은 아닐 것"이라고 추측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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