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의 이야기에 대한 집착은 유별나다. 끊임없이 옛이야기를 들려주려는 것이 황순원의 문학이다. 사회에서 이야기는 전통을 매개하고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황순원의 는 할머니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다.
어느 마을의 총각애가 고개를 넘어서 글방엘 다녔다. 총기 있고 글 잘하는 총각애였다. 하루는 고개를 넘을 때 꽃 같이 예쁜 색시를 만났다. 색시는 총각애의 귀를 잡고 입을 맞추더니 제 입에 물었던 알록달록한 고운 구슬을 총각애의 귀를 잡고 입에 넣었다 다시 제 입에 넣었다 하는 짓을 반복했다. 그런 일이 날마다 되풀이되었다. 총각애의 몸이 수척해지고 공부에도 진척이 없었다. 훈장이 몸이 아프냐고 물었으나 아무 일이 없다고 총각애는 잡아떼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글방 훈장이 총각애의 뒤를 밟았다. 다음날 훈장은 총각애에게 색시의 구슬을 삼켜버리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고 단단히 일렀다. 총각애는 어느 날 용기를 내어 구슬을 삼켰다. 그러자 색시가 커다란 구미호가 되어 죽어 넘어졌다. 여우고개란 이름은 이렇게 해서 붙여졌다는 전설이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는 아이에게 주어지는 세상에 대한 최초의 해석이었다. 동시에 미지의 세상 속에서 지혜롭게 살아나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의 역할을 한다. 이야기는 다분히 환상적이지만 분명 팜므파탈에 의한 파멸을 경고하며 삶의 현실을 담고 있다. 여우같이 예쁜 여자를 조심하라는 말이 아니다. 현상과 실제 사이의 괴리를 보여준다. 보기에는 매혹적인 것이 함정을 감춰두고 있음을 말해준다. 아이는 절대로 꽃 같은 색시에게 홀리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이야기는 아이의 성숙을 북돋고 한편으로는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아이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한 독립된 성인으로 살아나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는 부모에게도 지침을 준다. 사려 깊은 관찰자의 시선을 가진 훈장의 역할이다. 아이는 올바른 성장을 위해 어른의 옹호가 필요하다. 총각의 몸이 수척해지고 공부에 진척이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은 그냥 '보기'가 아닌 적극적인 '관찰'에서 시작된다. 뭔가 의미 있는 것을 발견해낼 때까지 끈질기게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이다. 아이가 무엇을 할 때 집중하는지, 언제 눈이 빤짝거리는지, 언제 불안해하는지, 무엇이 달라졌는지에 반응하는 것이다. 반응해주는 부모가 없을 때 아이들은 달콤한 유혹으로부터 취약할 수밖에 없고, 위기를 모면하지 못하게 된다. 현상과 실제 사이의 괴리를 알 때까지, 구슬을 삼킬 때까지 돌봄이 필요하다고 는 당부한다.
황순원의 작품이 어린아이와 노인, 동물에 시선을 보내는 것은 파괴적이고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수동적인 대상이기 때문이다. 황순원에게 어린이는 늘 희망의 가능성으로 나타난다. 독일 문학평론가 발터 벤야민은 이야기를 '경험을 교환하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통한 경험은 스폰지처럼 삶의 지표로 흡수된다. 5월이다.
황효숙 가천대 외래교수
간호사ㆍ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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