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 선장이다. 일반 선원인 P씨에게 선장인 척 하게 하고 나는 항해사로 가장했다."
중국인 Z(40)씨 등 9명은 지난해 11월 30톤급 목선을 타고 우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침범, 인천 옹진군 소청도 인근까지 내려와 불법조업을 하다가 해양경찰에 적발되자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저항한 혐의(배타적경제수역법 위반 및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로 기소됐다. 1심 재판에서 자신을 항해사라고 주장한 Z씨는 징역 2년에 벌금 3,000만원이, 선장이라고 밝힌 P(39)씨는 9명 중 가장 무거운 징역 2년6월에 벌금 4,000만원이 각각 선고됐다. 그랬던 Z씨가 지난달 30일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김기정) 심리로 열린 항소심 2차 공판에서 자신이 실제 선장이라고 자백했다.
앞서 1차 공판 때 P씨가 "나는 선장이 아닌 일반 선원이며 진짜 선장은 Z씨"라고 폭로(한국일보 4월9일자 11면)한 것이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Z씨가 항해사 역할을 차지하는 바람에 일반 선원으로 분류, 징역 1년6월이 선고됐던 X(36)씨도 이날 "Z씨가 선장이고 P씨는 선장 조수였으며, 나는 항해사"라고 증언해 Z씨 자백을 뒷받침했다.
Z씨가 밝힌 진상은 이렇다. 그는 배가 나포된 직후 P씨에게 선장 노릇을 해달라고 부탁했고, 다른 선원들에게도 그렇게 진술할 것을 당부했다. Z씨는 "14년 전 한국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넘었는데 선장이라고 밝혀 5개월간 구금된 경험이 있어 두려웠다"며 "가짜 선장인 P씨의 1심 형량이 너무 높게 나와 미안한 마음에 진실을 밝히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1차 공판 당시 P씨의 폭로를 부정했던 Z씨가 갑자기 마음을 바꾼 진짜 이유는 1심 선고 후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자신은 어떤 경우에도 형량이 지금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Z씨는 지난주 변호인으로부터 "선장이라는 사실을 밝혀도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불이익은 없을 것"이라는 조언을 듣고 마음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Z씨는 자신에게 동종 전과(배타적경제수역법 위반)가 있다는 사실까지 털어놓았다. 사실이라면 Z씨는 동종 범죄를 저지르고도 수사기관이 밝히지 못한 탓에 전과가 적용되지 않아 부당하게 가벼운 형을 선고 받은 셈이다. 공판 검사는 Z씨의 전과를 다시 확인하기로 했지만 형량을 올리는 것은 이미 불가능하다.
이에 대한 1차 책임은 선원들의 신분과 이름 등 인적 사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해경에 있다. 해경이 중국 선원들의 진술에 주로 의존해 신분과 인적 사항을 기록하기 때문에 누가 선장인지는 물론 전과마저 감춰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Z씨는 체포 당시 가짜 이름을 대 전과를 숨겼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해경 관계자는 "중국 불법조업 어선 선원들은 여권이나 신분증은 물론 선원 수첩도 소지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고, 중국 대사관을 통해서 확인 받는 것도 어려워 인적 사항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검ㆍ경은 물론 1심 재판부마저 속인 이들에 대한 추가 처벌은 불가능할까.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이 Z씨와 P씨를 각각 범인도피 교사죄와 범인도피죄로 기소하면 처벌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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