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 앞에 다시 서니 안심되고 뿌듯합니다."
1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 4가에 위치한 국보 1호 숭례문에는 개방을 기다리며 사진촬영을 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화재로 훼손된 지 5년 3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더 화려하고 근엄하게 서울을 내려다 보는 숭례문의 위용은 여전했다. 그 앞에서 남다른 감회로 올려다 보는 이가 있다. 숭례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의 신응수(71) 대목장이다. 그는 지난 5년여 간 복구작업을 하며 숭례문과 동거동락 했다.
신 대목장은 이날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962년 스물 한 살 나이에 전쟁 등으로 훼손됐던 숭례문 중수공사 때 참여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며 "50여년 만에 스승이 복구했던 그 숭례문을 내 손으로 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고 더 흐뭇한 마음"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2010년 전통적인 모습을 상실한 채 복원됐던 광화문 때와는 달리 숭례문은 상층부는 10%, 하층부는 90%의 나무가 훼손되지 않아 복원이 아닌 복구작업이 가능했다. 그렇다고 빠르고 쉬운 길을 택하진 않았다. 숭례문 복구에 5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린 것도 50년 이상 배우고 고수해왔던 전통기법을 고집한 때문이다. "목재를 찍어서 깎고 가공하는 전통연장인 대자귀도 직접 제작했고, 나무 손질도 일일이 손으로 다듬어 온 정성으로 전통을 고수했어요. 전기공구 같은 건 전혀 사용하지 않았지요. 만약 전통기법을 따르지 않았다면 1, 2년 안에 숭례문은 완공됐을 겁니다."
다시 새 생명을 얻은 숭례문은 쭉 뻗은 처마와 양측에 쌓인 성곽으로 더욱 웅장해졌다. 그는 "이번 복구작업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지붕모양과 처마선"이라며 "수백 년은 거뜬하게 버틸 수 있도록 지붕을 얹었고, 처마도 외부환경에 강하도록 튼튼하게 복구했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 달라진 건 지붕 안 쪽에 설치된 불꽃감지장치와 스프칭쿨러. 그는"고유한 문화재에 외관상 좋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도 했다. 외길을 걸어온 장인으로서 문화재에 부수적인 장치를 한 게 안타까운 듯했다.
숭례문 복원은 끝났지만 신씨 개인의 작업은 계속된다. 경복궁 소주방(음식을 만들던 곳) 복원, 울산의 태화루 신축 등 여러 프로젝트가 기다리고 있다. "문화재를 복구·복원 하는 건 우리의 것을 후손들에게 제대로 알리고 전하려는 것이죠. 국민 모두가 문화유산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져야만 가능한 겁니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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