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코엡 감독, 조니 뎁 주연의 '시크릿 윈도우'(2004)라는 영화가 있다. 스티븐 킹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것인데,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고 이혼을 준비하는 유명작가 모트(조니 뎁)는 새로운 소설을 쓰기 위해 인적이 드문 오두막에서 산다. 큰 상처를 입은 후 창의적인 에너지는 바닥이 난 상태이다. 간단한 문장조차 연결하지 못하는 그는 폐인처럼 하루의 일상을 가져간다. 그런 그에게 슈터라는 사내가 찾아온다. 슈터는 모트가 자기 소설을 표절했으며, 결말을 바꾸었다고 주장한다. 모트는 사실이 아니라며 그를 달래보려 하지만 사내는 점점 적대적으로 변해간다. 협박이 계속되자 모트는 자신을 보호하고 그 소설의 작가가 자신임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내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교활하고 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침내 모트는 그가 자기 자신보다 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심지어 슈터가 수년 전에 보냈다는 원고뭉치가 발견되면서 모트는 큰 혼란을 겪는다.
이야기의 중요한 모티브만 보자면 한 남자가 찾아와 작가가 자신의 소설을 훔친 것을 인정하라며 작가를 협박하는 것. 작가는 사실이 아니기에 부인하지만 혹시나 자신이 실제로 오래 전에 그의 말대로 소설을 읽은 적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진다. 이는 작가 자신에게 더 큰 강박과 혼란으로 다가온다.
오래된 영화이니 결말에 나오는 반전을 발설하자면, 이 모든 상황은 작가의 강박증이 만들어낸 환상이라는 것이다. 자기의 작품을 표절했다면서 찾아온 남자도 애초에 없었고, 오래된 상자에서 발견된 원고뭉치라는 것도 실제론 자기가 오랜 전에 써놓고 잊어버린 것이다. 새로운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강박과 자기가 쓴 작품이 혹 예전에 누군가에 의해 이미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불안이 이 영화의 주요 모티브로 작동한다.
실제로 작가는 자신이 새로운 작품을 써놓고도 믿지 못한다. 정녕, 자신이 이 모든 것을 만들어 냈는가 하는 것에 의문을 품는다. 작가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만 하는, 자기가 써내고 만들어내는 서사가 실존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사는 부류이기 때문이다. 또 작가들은 수많은 책을 읽고, 넘쳐나는 영상과 서사의 홍수와 대면하며, 자신이 만들어 내는 서사가 그리 새롭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부류이기도 하다. 우리의 서사라는 것은 이미 성경이나 신화에서 비롯된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거의 모든 갈등과 관계를 반복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작가는 신화나 성경에 그려진 서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것뿐이다. 새로운 서사는 반복되는 서사이며 작가가 만들어낸 서사의 반복에 대한 강박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실제로 그렇다.
봄이 시작되면서 한 언론에서 제기한 표절시비를 상기하며 씁쓸한 단상을 지을 수 없다. 자기의 소설을 도둑맞았다고 믿는 사람의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나, 과연 그런 확신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은 지을 수 없다. 문학을 어떠한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바라보는 게 옳은 일인가 곰곰 해질 수밖에 없다. 표절이라는 문제는 불순한 의도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한 쪽의 일방적인 해석과 제기로만 그 진위를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그것은 의심에 불과한 것이다. 불순한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면 목소리를 죽여야만 할 것이다. 의심을 가정하고 벌이는 표절시비는 이미 모욕의 다른 이름이다.
표절시비를 특집으로 실은 언론에게 드리는 제언 하나, 각 방송사 아침 드라마를 먼저 다루어 주십사, 끊임없이 전편의 표절을 일삼고 있으니. 내용과 인물설정이 언제나 같지 않은가, 사랑하는 연인인데 알고 보니 이복형제, 생의 비밀, 양가 부모의 미스터리한 과거 관계 같은. 시청자들이 반복되는 이야기의 드라마를 보면서 표절이라고 문제제기 하지 않는 이유를 그 기자만 모르는 것인가 해서 드리는 제보.
백가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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