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한 장도 예술이 된다. 정교한 사람의 손길이 더해진다면 3차원 시각예술인 ‘팝업아트’로 진화한다. 팝업아트란 접힌 종이나 책을 펼쳤을 때 입체적으로 튀어나오는 시각예술이다. 19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 전당 내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는‘세계팝업아트전’은 종이가 얼마나 근사한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국내에선 흔치 않은 이 전시회엔 로버트 사부다와 브루스 포스터(미국), 잉그리드 실리아키스(네덜란드), 벤자 하니(호주), 유 조르디 푸(중국)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팝업 아티스트 작품들이 대거 등장했지만, 한국의 작가 박석(48)씨도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90도 팝업’을 전문으로 하는 박씨는 이번 전시에도 10여점의 90도 팝업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1일 한국일보와 만나 “90도 팝업이란 종이 한 장만을 이용해 접었다가 폈을 때 보여지는 입체적 예술작품으로, 수학과 미학의 공식이 공존하는 예술”이라고 했다. “팝업 아트는 평면적이고 공간적인 개념을 명확히 알고 있는 작가만이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해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도안을 완성해야만 종이를 접었다가 펼쳤을 때 섬세하게 커팅한 부분이 무너지지 않고 고정돼 입체 조형이 완성되거든요. 그러니 수학적인 공식이 중요한 겁니다.”
박씨가 언급한 90도 팝업아트는 종이가 90도로, 즉 ‘ㄴ’자로 폈을 때 완성되는 입체예술이다. 책을 완전히 펼치는 180도나 조형물이 전체적으로 다 보이는 360도 팝업아트보다 더 어려운 작업일 수밖에 없다. 이들 팝업아트
의 경우 종이나 책 위에 입체적으로 커팅한 것을 붙여서 완성하기 때문이다.
전시회를 둘러보면 로버트 사부다의 나 브루스 포스터의 처럼 책 속에서 화려하게 튀어나온 작품들 속에서 박씨의 작품은 90도 팝업아트로 단아하면서도 청초한 느낌마저 든다. 특히 하얀 종이로 우리 고유의 문화를 담아낸 ‘서울’, ‘천년의 다보탑’ 등은 여백의 미로 한국적인 멋을 표현했다는 평가다.
이런 그가 전시회에 참여하기까진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20여년 간 광고대행사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한 그는 불과 7년 전에 팝업 아티스트의 길로 들어섰다. 국내엔 생소한 분야라 배울 만한 곳이 없어 독학했다. 1년 동안은 평면과 입체의 관계에 대한 원리를 익히는 데 할애했다. 까다로운 도안작업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렇게 7년을 이어오면서 A4크기의 종이에 한국 고유의 문화재를 작품에 담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팝업아트의 대중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알아주는 이가 없는 외로운 싸움이기도 했다.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저도 변한 것 같아요. 종이가 아닌 알루미늄으로 제작되거나, 빛과 그림자 등 부수적인 장치가 작품을 빛나게 할 수 있다는 걸요. 하지만 우리 문화를 담아내는 작업은 계속 이어갈 겁니다.”
강은영기자 kis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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