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교장·교사·학부모 모두 '즐거운 학교' 목표에 공감해야 성공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교장·교사·학부모 모두 '즐거운 학교' 목표에 공감해야 성공

입력
2013.05.01 11:43
0 0

30일 서울형 혁신학교인 양천구의 신은초 6학년 열매반 교실. 모둠수업을 위해 22명의 아이들이 4~6명씩 머리를 맞대고 앉아 있었다. 한 모둠인 건호, 동욱, 소임, 수빈이는 '우리나라 인구 구성'에 관한 모둠지를 놓고 궁리 중이다. "그래프를 보면 유소년층 비율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저출산 고령화 때문일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 "책에서 찾아보자." 교과서를 찾아보며 2장의 모둠지 문제를 해결한 후 글씨를 예쁘게 쓰는 소임이와 수빈이가 정리를 했다. 발표는 목소리가 큰 건호와 동욱이가 하기로 했다.

이 학교 수업은 학생들이 주도한다. 담임교사는 길잡이 역할을 할 뿐이다. 모둠 사이를 돌아다니며 논의가 잘 되고 있는지, 누가 소외되고 있지 않은지 살핀다. 다른 학교 친구들에게 학교 자랑을 하고 다닌다는 건호는 "선생님 설명만 듣는 것보다는 우리끼리 토론하면서 하는 모둠수업이 이해도 잘 되고 머릿속에 더 잘 들어온다"고 말했다. 담임인 진미정 교사는 "모둠수업을 하다보면 아이들끼리 다툼이 있거나 으레 '선생님, 쟤는 안 해요'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미 4학년부터 해왔던 이 아이들은 오히려 모둠으로 해결하는 수업을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그래선지 보통 교사만 말하는 6학년 교실과 달리 학생들이 너도나도 손을 든다. 진 교사가 "왜 저출산이 나타날까?"라는 질문을 던지자 10여명의 아이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2011년 문을 연 신은초는 교장ㆍ교감과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한마음으로 '살아 숨쉬는 학교'를 만들어가고 있는 혁신학교의 성공적인 사례다. 모둠수업과 블록수업, 프로젝트 수업 등 수업 혁신이 학생과 학부모의 호응을 얻어내고 있다.

전학 온 6학년 최규리양은 "전에 다니던 학교는 수업 분위기가 딱딱했는데 여긴 자유롭다"며 "80분 블록수업을 하는 대신 30분 쉬는시간 동안에 밖에 나가 피구를 하거나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대신 교실에 땀 냄새가 진동해요." 한 친구가 끼어들었다. 수업시간이 길어지자 설명으로만 끝내던 것도 도구를 사용하거나 체험 활동으로 이어졌다.

강의식 수업에 익숙한 고등학생들도 시간이 지나면 바뀐 수업에 잘 적응한다. 처음에는 모둠수업에 불만을 가졌던 삼각산고(혁신학교) 3학년 장유진양은 "모둠수업에 익숙해지면서 누구든지 수업시간에 활발하게 발언을 한다"며 "아무 얘기 안 하는 조용한 수업이 오히려 안 좋은 수업이라는 걸 이제 알았다"고 말했다. 모둠수업을 통해 친구들은 경쟁대상이 아니라 협력하면서 서로 배우는 사이가 됐다.

'가르치는 일'에 대한 교사들의 고민은 학교 곳곳에서 묻어난다. 같은 학년 교실이 한 층에 모여있는 대부분 학교와 달리 신은초는 '어깨짝반'을 운영하고 있다. 6학년 열매반의 어깨짝반은 1학년 열매반으로, 바로 옆교실을 쓴다. 명노철 혁신부장은 "6학년이 1학년에게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함께 야외활동도 하면서 '무서운 6학년'이 아니라 학교에 있는 형, 언니로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다"며 "6학년도 의젓하게 변하는 등 긍정적인 또래문화 형성과 학교폭력 없는 학교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2학년과 5학년, 3학년과 4학년이 어깨짝반을 맺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혁신학교에 만족도가 높은 것은 수업 때문만이 아니다. 구성원간 자율성을 인정하는 문화가 핵심 중 하나다. 신은초는 9월 2박3일 수학여행에 대해 6학년 전체가 여행 코스, 숙박, 교통, 식비를 놓고 모둠별 토론과 결과 발표, 투표를 거쳐 정했다. 소임양은 "수학여행지를 우리 스스로 결정하니 불만도 없고 뿌듯했다"고 말했다. 5학년 학부모 이정아(43)씨는 "아이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선생님이 다 들어주신다'며 학교가 너무 좋다고 한다"며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던 아들이 이 학교를 다니면서 자존감이 높아지고, 학교 가는 걸 행복해하고, 학교 가는 시간을 기다려 대만족"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혁신학교가 다 이렇지는 않다. 지난해 혁신학교로 전환한 A고는 수업혁신은커녕 교장과 교사 간 갈등만 깊어졌다. A고 교장은 교육부가 지정한 교과교실제 시범사업과 혁신학교 전환을 동시에 신청했는데 교사들은 "둘 다 동시에 추진하면 아이들이 힘들어진다"며 교과교실제에 반대했다. 하지만 교장ㆍ교감은 권위적으로 교과교실제를 강행했고, 교사들 역시 "다수 의견"이라며 맞섰다. 학생인권조례를 반영한 교칙을 만드는 과정에서 대립은 더 심화됐다. 교장은 "두발 규제를 두어야 한다"고 고집했고, 교사들은 "인권조례에 따라 규제를 없애야 한다"고 대립했다. 이 학교 관계자는 "교장은 권위를 내세워 주장을 관철하려 하고, 교사집단은 자신들끼리 방향을 정해 놓고 다수라며 밀어붙이면서 혁신과는 거리가 멀어졌다"고 말했다.

혁신학교 제도를 엉뚱하게 이용하려는 학교도 있었다. B고 교장은 1억4,000여만원의 혁신학교 지원 예산과 교육과정의 자율적 운영 등을 보고 지난해 교사, 학부모湧?의견수렴 없이 혁신학교 전환을 신청했다. 전환 후엔 국영수 위주로 수업시간표를 편성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혁신'을 원하는 교사ㆍ학부모들이 반발해 수업시간표는 유야무야됐고, 그렇다고 수업혁신도 이뤄지지 않았다.

C고는 거꾸로 입시 준비를 바라는 학부모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학교 측이 다양한 체험활동과 수업 개선을 추진하자 학부모들이 "아이들 입시는 어쩔 거냐"며 집단으로 교장실을 방문, 항의하는 바람에 교사들이 수업 개선을 연구하는 것 외에 별다른 혁신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학교 교사는 "학부모들에게 미리 충분히 설명하고 교감을 이뤘어야 했다"고 말했다.

혁신학교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의 관건은 교장ㆍ교사ㆍ학부모가 실질적인 교육공동체를 이뤄 작동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혁신학교를 경험한 이들은 말하고 있다. 김정안 삼각산고 교사는 "구성원간 상호존중하고 이견이 있을 때 토론하면서 합의해 공동으로 해결책을 찾는 것인 혁신학교의 성공 비결"이라며 "혁신을 추구하는 교사들의 열정ㆍ능력의 총합과 교장ㆍ교감들의 경영 능력이 잘 버무러져야 학교가 잘 된다"고 말했다. 손동빈(48)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참교육실 정책국장은 "교장이 리더십을 발휘하되 교사ㆍ학부모 등 운영주체들과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