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뜨겁다. 상식이다. 그건 거의 '하늘은 파랗다'는 것만큼 자명한 이치로 들린다. 물론 차갑게도 마신다. 하지만, 스트로 꽂힌 플라스틱 잔에 담겨 얼음덩어리 사이로 흑갈색 와류를 일으키는 건, 막 에스프레소머신에서 뽑아낸 뜨거운 샷(shot)이다. 편의점 냉장고 안에 가지런히 줄지어 있는 차가운 캔커피도, 커피로 태어나는 순간은 크게 다를 것 없다. 뜨거운 물이 분쇄된 커피 원두와 만날 때 추출돼 나오는 액체, 요컨대 그것이 커피다. 지금까진 그랬다.
그런 상식을 깨는 커피가 퍼지고 있다. 차가운 물로 우려내는 커피, 우리나라에선 '더치 커피(Dutch coffee)'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콜드 브루 커피(cold brew coffee)다. 화학실험실의 플라스크 같은 추출장비의 기묘한 생김새 덕에, 마시기보다는 보여주기 위해 카페에 전시되던 커피다. 그런데 맛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늘면서 콜드 브루 커피가 카페의 인테리어 소품에서 주문대의 메뉴로 빠르게 이동 중이다. 대기업의 캔 제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차갑게 우려낸 커피의 맛은 대체 뭐가 다른 걸까? 커피 로스팅 전문가 이정무 루왁코리아 대표와 함께 콜드 브루 커피에 대한 의문을 문답 형식으로 풀어본다.
Q. 커피는 원래 뜨거운 물로 추출하는 것 아닌가.
A. 대략 1,000년 전부터 커피가 소비된 것으로 알려졌다. 열매를 그냥 먹다가 기본적인 추출을 시작한 게 18세기, 지금의 에스프레소 방식이 등장한 건 20세기다. 인도네시아 자바나 페루, 베트남에 남아 있는 콜드 브루의 역사가 오히려 더 길다. 커피에 '원래'란 없다.
Q. 에스프레소 커피와 핸드 드립 커피, 콜드 브루 커피는 어떻게 다른가.
A. 에스프레소의 포타필터는 기름 성분을 걸러내지 못해서 텁텁한 맛이 있다. 원래 이탈리아 사람들이 그 유분을 즐기기 위해서 만들었다. 핸드드립은 필터가 기름 성분을 빨아들여 상당히 깔끔한 맛이 난다. 느낌은 다르지만 커피 원두에서 추출되는 물질은 같다. 반면 콜드 브루는 물의 온도가 낮고 반응하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원두에서 나오는 물질 자체가 다르다. 커피를 추출한다는 건, 그라인더로 원두의 세포벽을 부숴서 속에 있는 물질을 용매(물)에 녹여내는 일이다. 예컨대 방향족(芳香族) 화합물은 섭씨 63~65도면 날아가 버리는 성질이 있다. 콜드 브루는 그런 성분이 휘발되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에 아로마가 훨씬 풍부하다. 반대로 쓴맛을 내는 클로로제닉산은 고온에서 추출되기 때문에 콜드 브루 방식에선 덜 녹아 나온다. 똑 같은 원두를 써도 에스프레소나 핸드드립보다 콜드 브루가 더 부드러운 느낌을 갖는 이유다.
Q. '더치(콜드 브루) 커피의 매력은 묵직한 향과 무게감'이라고들 하는데.
A. 제대로 된 콜드 브루 커피를 마셔봤는지 의문이 든다. 흔히 칡냄새가 난다고 하고 그걸 묵직하다며 좋아하는데, 사실 그건 불에 볶은 원두가 너무 오래 물에 불어서 나는 목탄당 같은 냄새다. 그 냄새는 결코 좋은 향이라고 할 수 없다. 좋은 원두로 제대로 우려낸 커피는 훨씬 깊고 다양한 향을 낸다. 바디(무게감)가 강한 건 사실이다. 바디를 결정하는 건 섬유질인데, 이건 물에 녹지 않지만 오랫동안 용매와 접촉하면 잘게 분리돼 입 속에 머금었을 때 중후함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된다.
Q. 책엔 콜드 브루를 위한 원두는 강배전(쓴맛과 단맛을 내기 위해 강하게 볶는 기법)한 것을 써야 한다고 나오는데.
A. 말했듯이 커피에 원래란 없다. 추출 단계뿐 아니라 커피 콩을 볶는 단계에서도 온도와 시간에 따라 커피의 서로 다른 성분이 강조돼 표현된다. 칡냄새에 가까운 그 묵직한 향을 내려면 강배전이 적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콜드 브루엔 요즘 스칸디나비안 스타일로 일컫는 약배전(신맛과 감미로운 향을 살리도록 약하게 볶는 기법)을 선호한다. 살짝 신맛이 남아 있을 때, 커피의 맛은 깊고 풍부해진다. 에스프레소든 콜드 브루든, 맛과 향이 '바이브런트'한 것이 좋은 커피다.
Q. 콜드 브루 커피가 다른 커피에 비해 좋은 점이 있다면.
A. 콜드 브루 커피는 아무래도 애시드(산미)가 적다. 반대로 초콜릿 같은 단맛은 풍부하다. 그냥 마셔도 파우더가 약간 든 듯한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는 이유다. 원래 달달한 다방 커피를 마시던 한국인의 입맛엔 에스프레소나 핸드드립보다 훨씬 더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위장에 주는 자극도 훨씬 적은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콜드 브루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풍부한 향과 맛. 커피에 포함된 성분은 1,000가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각각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전히 연구하고, 발견되는 중이다. 뜨거운 물과 접촉할 때는 날아가버리는 성분이 차갑게 우려내는 커피엔 남을 수 있는데, 그 깊은 맛과 향은 한국인들이 아직 접해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다. 커피를 만드는 데 복잡한 기계나 불, 전기를 쓰지 않는 것도 독특한 매력이다.
●이정무 루왁코리아 대표의 '하우스 콜드 브루 커피' 제조법
1. 에티오피아산 원두를 절반, 인도네시아 또는 브라질산 원두를 절반씩 섞어 굵은 모래알 크기로 간다. 원두를 살 땐 되도록 약배전된 것을 고른다.
2. 깨끗한 면포에 간 원두를 싸서 상온의 물에 불린 뒤 냉장고나 서늘한 곳에 둔다. 냉장고에선 24시간, 상온에선 8~12시간이 적당하다.
3. 시간이 되면 면포를 짜서 건져낸다. 밀폐된 유리병이나 플라스틱 통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2주 이내 소비)한다. 마실 땐 물과 원하는 비율대로 섞어 마신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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