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편이 회사사정으로 월급을 못 받아 많이 힘든데 군대서 휴가 나온 아들이 이런 저희 돕는다고 몰래 배달 일을 했어요. 그러다 교통사고가 나 어제 오늘 내내 치료만 받고 있습니다. 경미한 부상이지만 그냥 셋이 같이 울기만 했습니다…."
서울 성북구에 혼자 사는 이모(42)씨는 지난해 12월 모 라디오 프로그램 게시판에 이렇게 사연을 올렸다. 이웃에 사는 50대 주부 도모씨의 명의를 도용해 라디오 방송 사이트에 가입을 한 뒤 올린 거짓 사연이다. 청취자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 내용은 전파를 탔고, 사연 소개에 따라 방송사로부터 받은 백화점 상품권은 1주일 뒤 도씨가 아닌 이씨에게 배달됐다.
이씨는 지난 2006년 4월부터 최근까지 KBS, MBC, SBS, CBS 등 방송사 홈페이지에 타인의 주민번호를 사용해 인터넷 회원으로 가입한 뒤 라디오 프로그램 게시판에 거짓사연을 올리는 수법으로 지난 7년 동안 8,000만원 상당의 경품을 탔다. 이씨의 사연은 인터넷에 떠도는 감동적인 글을 짜집기한 것이다.
전단지 부착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씨는 처음에는 경품을 타낼 목적으로 방송 게시판에 자신의 이름으로 허위 사연을 올리기 시작했다. 사연이 당첨되는 횟수가 늘어나 자신감을 얻은 그는 거짓사연이 발각되지 않도록 타인의 명의로 사연을 올리기 위해 이웃 주민이 버린 서류뭉치나 재활용품 보관장소 등에서 인적 사항을 수집했다. 이렇게 모은 180명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올린 거짓 사연이 무려 2,000여건. 이중 700여건이 채택돼 경품을 받았다. 이씨는 MBC의 '여성시대', '지금은 라디오 시대', KBS의 '사랑하기 좋은 날' 등 인기 프로그램을 포함, 여러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번갈아 사연을 보냈고 채택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품 수령 시 없는 주소지를 쓴 뒤 택배 기사가 전화로 확인하면 정확한 주소를 알려주는 식으로 방송사의 감시망을 벗어났고, 수령한 경품의 일부는 인터넷을 통해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7년여 간 이어진 이씨의 범행은 지난 16일 성북구 한 동사무소에서 결국 덜미를 잡혔다. 여러 개의 주민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옆에 두고 민원용 컴퓨터를 이용해 사연을 올리는 이씨를 본 한 주민이 수상하다며 경찰에 신고했고, 인적 사항 입수 경위를 캐묻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그 간의 행각이 들통났다.
서울 종암경찰서는 이씨의 집에서 백화점 상품권과 세탁기, 압력밥솥, 전기매트, 귀금속 등 2,000만원 상당의 경품 2톤 가량을 압수하는 한편 이씨를 주민등록법 위반, 점유이탈물 횡령, 절도 등 3가지 혐의로 입건, 여죄를 추궁하고 있다.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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