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해방 당시 남북의 발전설비용량 172만3,000㎾ 가운데 남한이 차지한 비중은 11.5%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 발전량은 더 열악해 4.5%, 4만3,000 ㎾에 불과했다. 사용 전력의 대부분을 북한에서 송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미 군정 당국은 북측과 10만㎾ 전력공급 협정을 맺었다. 북측은 그 대가로 전구, 케이블, 전선, 타이어 등을 받아 서울역에서 열차로 실어갔다. 남북간 전기와 철도의 피가 희미하게나마 통하던 시절이었다.
▲ 그런데 북측이 48년 5월14일 정오를 기해 일방적으로 단전을 실시했다. 전력대금 물자 미지불 이유를 댔지만 나흘 전 남한만의 5ㆍ10 총선을 겨냥한 조치임이 분명했다. 남한 수요 70%의 전력공급이 갑자기 끊겼으니 혼란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전기사용 시간 제한 등의 긴급조치를 취했지만 서울의 유일 대중교통수단인 전차가 멈춰 섰고, 산업시설도 가동을 중단했다. 미 군정청 트럭을 개조한 버스와 합승마차가 서울 거리에 등장했다.
▲ 2005년 3월16일 한전은 북측 지역 개성공단 내 입주업체인 신원㈜, SJ-GS와 개성공업지구 관리위원회에 전력 공급을 개시했다. 남북 단전 57년 만에 남측이 북측 지역에 전력공급을 시작한 이날은 한반도 전력사(電力史)에 남을 만하다. 한전은 2007년 공단 내 평화변전소가 준공된 뒤에는 매일 10만㎾ 전력을 입주기업들에 공급해왔다. 이 전력으로 공단 내 정수장에서 생산된 용수 2만1,000t가운데 1만4,000t은 개성주민 10만 명의 식수로 쓰인다.
▲ 개성공단에 공급해 오던 전력의 단전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잔류인원 완전 철수와 함께 바로 단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입주기업 기계 시설을 유지하는 데 전기가 필요하다는 현실적 문제가 있어 당장 단전은 어렵다. 단전 시 개성주민들에게 공급하던 수돗물이 중단되는 인도적 문제도 있다. 북 주민들이 우리 정부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도 감안해야 한다. 군사분계선 너머로 뜨겁게 흐르는 전기가 단절되지 않고 개성공단을 되살리는 에너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계성 수석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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