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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 배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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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 배탈

입력
2013.04.3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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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탈이 났다. 이틀째 속이 부글거리고 10분마다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열이 나고 팔다리가 욱신거렸다. 오후에 회의가 잡혀있는데 아무래도 참석할 수 없다는 연락을 해야 할 듯 했다. 하지만 막상 전화기를 손에 드니 고민되는 것이 있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자리에 나가 내 의견을 보탤까 말까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뭐라 말하는 게 좋을까 하는 고민이었다. 배탈이 났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배탈의 어감이라는 게, 참으로 친숙하고 가볍다. 회의에 빠지고 싶어서 꾀병을 둘러대는 것 같달까. 솔직히 회의는 지루하게 늘어지는 때가 다반사라 귀찮은 마음이 이미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긴 하다. 그럼 어떤 말로 내 상태를 전하는 게 좋담. 토사곽란? 급성 장염? 아니면 그저 몹시 아프다고 해야 하나? 전화를 하는 대신 문자를 쳤다. 장염이 너무 심해서 오늘 못 나갈 듯합니다. 죄송합니다. 거짓말을 한 것 같아 찜찜한 기분이었는데, 병원에 가서 진짜 장염 진단을 받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배탈 대신 장염이라는 병명을 얻고서야 나의 병은 진중한 상태가 되었다고나 할까. 다만 내 몸이 느끼기로는 역시 배탈이다. 장염도 위통도 복통도 설사도 아닌, 배탈. 배탈에 정확하게 대응하는 묵직한 한자어가 떠오르지 않아 유감이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해 홍길동이 서러웠던 것처럼, 배탈을 배탈이라 부르지 못하는 나의 병도 조금은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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