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7월3일 페르시아만에 정박 중이던 미 항공모함 빈센느 호가 실수로 이란의 민간 여객기를 격추하여 290명의 민간인을 살상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기자들로부터 이 사건에 대한 논평을 요청 받았다. 이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 한 일에 대해 나는 결코 사과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이 무엇인지는 상관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나온 말이겠지만 이 말은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하나의 국가로서 미국이 지니는 특성을 아주 잘 드러낸다. 미국, 다시 말해 제국이 하는 일은 곧 정의고 진리라는 것이다.
얼마 전 아들 부시 전 대통령이 오랜만에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그는 지난 25일 텍사스주 달라스에 자신을 기념하는 도서관을 개관했다. 개관식에는 오바마 현 대통령을 비롯해 생존하는 역대 미 대통령 전원이 얼굴을 비쳤다고 한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라크전과 관련한 비난을 의식한 듯 "나의 정치의 신념은 미국은 자유확대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고도 했고, "얼마나 곤란한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이해해달라"고도 했다. 그러나 최근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부시는 자신이 대통령으로서 했던 일들에 대해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내가 한 일들에 대해서 떳떳하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 떳떳하다"고 말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그가 떳떳해하는 일들 중에는 이라크전쟁도 포함될 것이다. 그는 한때 이 전쟁에 대해 '하느님의 섭리'를 들먹였었다. 최근 미국 브라운 대학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 전쟁으로 인해 18만여 명의 이라크인이 죽었고 그 중 70% 이상이 민간인이었다. 미국 납세자들이 부담할 비용은 2.2조 달러(2천500조원)이고, 미래의 예산을 끌어다 쓴 것이기 때문에 2053년까지 지불할 이자를 포함하면 총액은 3.9조 달러(4천4백조원)에 달한다. 사망한 미군은 4488명이며, 미군과 관련된 사람이 3400명 죽었다. 또한 이 전쟁은 약 5백만 명의 난민을 초래했고, 미국에 어떠한 위협도 가하지 않은 나라의 사회 전반에 테러와 학살을 일상화했다.
그러고도 이라크 전쟁은 실패로 끝났고, 전쟁의 빌미가 되었던 이라크 내 대량살상무기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시민운동가이자 미 대선에도 출마했던 랄프 네이더는 부시와 체니는 사담 후세인의 대량파괴 무기에 대해 거짓말을 했을 뿐만 아니라 상습적인 헌법위반, 연방법과 국제조약 위반행위를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부시가 재임시 저질렀던 범죄행위들에 대해 조사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라크전에 참전했다 심각한 부상을 입고 퇴역한 토마스 영은 극심한 통증과 마비로 고통을 받다 더 이상의 치료를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는 자신의 삶이 끝나가던 지난 3월 부시와 체니에게 마지막 편지를 썼다. 그는 그들을 향해 "수천 명의 미국 젊은이들을 죽인 살인자이며 전쟁범죄자이고 약탈자"라고 썼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전쟁에 보낸 것을 통탄하고, 내가 가져보지 못한 손자들을 통탄하며, 무엇보다 이 모든 고통이 생길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이 끔찍하다"고 비통해했다. 지금 미국민은 부시와 체니가 저지르고 자신들이 묵인했던 전쟁의 부메랑을 맞고 있다. 보스턴 테러용의자 조하르 차르나예프는 폭탄테러를 한 이유에 대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저지른 범죄행위" 때문이라고 했다.
모든 제국은 자기모순에 의해 쇠락하고, 흔히 이 자기모순은 자신들만이 정의와 진리의 기준이라는 오만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미국에서건 이라크에서건 이러한 오만으로 이득을 얻는 것은 거짓말하는 정치가, 전쟁민영화를 수행하는 장사꾼들, 군수산업자, 훈장을 단 장군들이다. 대신 평범한 사람들에게 전쟁의 결과란 보스턴 테러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절단 난 육체들, 좌절된 꿈, 깊은 슬픔이다. 토마스 영과 보스턴 테러, 아마도 그것은 미국민들이 대면하고 싶지 않은 이라크 전쟁의 맨 얼굴일 것이다.
박경미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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