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백령도 인근에서 침몰한 천안함에는 배 안팎을 비추는 CC(폐쇄회로) TV가 11대 있었다. 하지만 침몰과 함께 당시 영상을 저장한 컴퓨터도 염분 가득한 바닷물에 몽땅 잠겼다. 침몰 45일 후, 뻘 속에 빠져있던 컴퓨터를 밖으로 꺼냈지만 전문가들은 “하드디스크 복원은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때 고졸 출신의 한 복원 전문가가 도전해 CCTV 영상을 기어코 살려냈다. 정확한 침몰 시간과 침몰 전후 해병들의 모습이 담겨 있는 이 영상은 천안함 침몰 사건을 조사하는 중요한 단서가 됐다.
복원 전문가는 이명재(57) 명정보기술 대표다. 국내 데이터 복구 분야 개척자인 그는 등록금이 공짜라는 단 한가지 이유 때문에 경북 구미의 금오공고에 진학했지만 기술에 흥미가 없어 한동안 방황한 ‘전력’도 있다. 이후 레이더 정비 하사관으로 5년간 군생활을 하면서 첨단기기 수리에 흥미를 가졌다.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제대 후인 1983년 컴퓨터하드디스크 헤드 생산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주도하던 미국계 다국적 회사인 AMK에 생산직으로 입사했다. 생산직으로 일하면서도 하드디스크 관련 기술을 혼자 공부했고, 90년대 초 고장이 나면 늘 일본으로 수리를 보내던 AMK 회장의 컴퓨터를 직접 고치면서 초고속 승진했다. 93년 AMK가 높은 인건비 등으로 한국에서 철수한 뒤 이 대표는 그곳에서 쌓은 기술과 영업망, 고객까지 그대로 흡수해 지금의 회사를 차렸다.
3명으로 시작한 회사 직원은 280명으로 늘었고, 지금까지 30만건이 넘는 데이터를 복구했다. 2010년 링스헬스 추락사고 때 헬기에 내장된 하드디스크를 복원, 사고 원인을 밝혀내기도 했다. 지난달 20일 금융기관과 방송사의 전산망이 마비된 이른바 ‘3∙20 전산대란’ 때 망가진 컴퓨터 3만2,000여대 중 70%를 이 회사에서 복구했다. 복구 성공률은 97%에 달했다.
여유가 생기면 대학학위를 딸 만도 하지만 그의 최종학력은 여전히 고졸이다. 이 대표는 “필요한 공부는 스스로 할 수 있고, 금오공고 졸업과 기능한국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굳이 학위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며 “박사학위 있는 사람들을 오히려 가르치고 있는 중”이라고 웃었다.
한국인력공단은 29일 이 대표를 포함해 학력의 벽을 넘어 ‘기술 장인’으로 우뚝 선 우수숙련기술인 3명을 올해의 ‘우수숙련기술인 홍보대사’에 위촉했다. 공단은 이들을 ‘국민스타’로 만들어 젊은이들이 기술인을 꿈꿀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초등학교만 나와 보일러설비회사 보조로 취업, 2001년 국내 유일 여성 보일러 기능장이 된 오서영(60) 샤인이엔지 대표, 중국산으로 무너진 한국 난(蘭) 농업계에서 39개의 난 품목을 개발해 전국적으로 종묘를 보급한 이대건(47) 이대발 춘란 대표가 함께 홍보대사에 이름을 올렸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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