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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선수 한 번 부딪혀보면 계산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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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선수 한 번 부딪혀보면 계산 나와요"

입력
2013.04.2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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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뚫는 것보다 뺏는 게 더 재미있었어요."

아이스하키는 몸 싸움이 거칠고 심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포지션은 수비수다. 국내 남자 아이스하키 프로팀은 딱 2개. 아주 열악한 상황이다 보니 간판 수비수가 부족하다.

그래도 안양 한라에서 뛰고 있는 수비수 이돈구(25ㆍ180㎝)는 국내 아이스하키에서 보물 같은 존재다. 그는 지난해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FH)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 1 B그룹에서 국가대표팀의 우승을 이끈 데 이어 올해 헝가리에서 끝난 IIFH 세계선수권 디비전 1 A그룹에서 5위로 잔류하는 데 일등 공신이 됐다.

"아이스하키는 내게 인생 그 자체다"고 이야기 하는 이돈구를 지난 24일 홍대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수비수는 나의 운명

이돈구는 경희초 2학년 때부터 아이스하키를 했다. 당시 초등학교 아이스하키부의 사령탑이자 부모님과 친분이 있던 권준영 감독의 권유로 처음 아이스하키를 시작하게 됐다. 운동을 좋아하던 이돈구에게 아이스하키란 스포츠는 매력 그 자체였다.

"일단 한번 부딪혀보면 감이 와요." 몸에 15㎏이상의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경기에 나가야 하는 아이스하키는 어떤 종목보다도 치열한 몸싸움이 펼쳐진다.

이돈구는 이처럼 거칠고 힘든 스포츠의 수비수가 오히려 즐겁다고 환하게 웃었다. "그렇다고 피할 수는 없잖아요. 피하면 상대 기세가 등등해지는데 일단 빙판에 올라가면 '한번 붙어보자'하고 죽기살기로 해야죠."

"이상하게 상대를 뚫는 것보다 막는 데 쾌감이 있었다"고 말하는 이돈구는 화려함을 추구하는 공격수와 달리 상대와의 격렬한 몸싸움을 해야 했다. "경기 중에는 집중하다 보니 느껴지지 않지만 경기 후 숙소에서 누우면 온 몸이 몽둥이로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그는 "단순히 수비만 하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경기를 조율하는 것이 정말 매력적이다"고 덧붙였다.

2번의 시련,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들다

어렸을 때부터 또래 수비 선수 중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보이면서 승승장구 했던 이돈구에게도 힘든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집이 갑자기 어려워져서 아이스하키를 그만둬야 했던 적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당시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4개월 만에 아이스하키를 다시 할 수 있었지만 당시의 시련을 통해 그는 절실함을 배웠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지난해 7월 안양 한라 소속 10명의 선수들을 핀란드 팀에 집단 이적시켰다. 이른바 '아이스하키판 신사유람단'이었다. 아이스하키 선진국 핀란드에서 4개월의 생활을 통해 이돈구는 안주하고 있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말로는 절실하다고 했지만 정작 난 정체돼 있었던 것 같다"며 "내 자신을 냉정하게 되돌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적으로 성숙해졌고 빙판 위에서의 시야가 한결 넓어질 수 있었다.

평생 잊을 수 없었던 세계선수권의 추억

지난해 남자 아이스하키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IIFH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 1 B그룹에서 개최국 폴란드를 꺾고 5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돈구에게 잊지 못할 최고의 순간이었다. "0-2로 뒤지다 3-2로 뒤집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애국가를 듣는 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났다"고 그때의 감격을 설명했다.

최근 헝가리에서 끝난 IIFH 세계선수권대회 디비전 1 A그룹 경기 또한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주축 수비수인 이승엽과 김혁이 모두 부상으로 경기에 나가지 못하면서 이돈구는 정말 죽기살기로 뛰어야 했다. 특히 개최국인 강호 헝가리(세계 19위)전에서 3-4로 뒤지던 연장전에 상대의 슛을 몸을 던져 막아내 역전승의 주역이 됐다. 경기 후 IIHF 홈페이지 메인 사진으로 이돈구가 만세를 부르는 모습이 장식했을 정도였다. 이변이었다.

이돈구는 "아이스하키를 하면서 후회했던 적이 있었느냐"는 물음에 망설임 없이 "단 한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돈구는 "개인적으로 힘들었을 때 나쁜 길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다 아이스하키 때문인 것 같다"며 "인생 자체가 아이스하키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단 평창올림픽을 목표로 최선을 다해 달려가고 싶다. 은퇴 후에도 아이스하키와 관련된 일들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재상기자 alexe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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