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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덕카드 읽어보세요" 힐링받는 '버추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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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덕카드 읽어보세요" 힐링받는 '버추택시'

입력
2013.04.28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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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새벽 서울 마포구 망원역 앞에서 민정웅(69)씨의 개인택시에 30대 남성 한 명이 탔다. 술에 잔뜩 취한 이 남성은 다짜고짜 반말에 욕설까지 섞어가며 행선지를 재촉했다. 아들 또래 승객에게 욕설을 들었는데도 민씨는 웃음 띤 얼굴로 "한 장 뽑아보시라"며 카드 꾸러미를 내밀었다. "유치하다"고 코웃음 치며 거부하던 승객이 계속된 권유에 마지못해 뽑은 카드에는 '용기'라는 단어와 짧은 글귀가 적혀있었다. '실수를 인정하고 교훈을 얻으세요. 잘못을 하면 즉시 사과하고 도움이 필요할 땐 요청하세요.'

카드를 읽은 승객은 한동안 말이 없다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입을 열었다. "밤새 도박으로 돈을 다 잃고 화풀이 대상이 필요해 일부러 시비를 걸었습니다." 택시에서 내리며 민씨를 향해 정중히 인사도 했다. "누군가에게 위로 받은 것도 참 오랜만입니다. 죄송합니다."

민씨가 승객에게 내민 것은 버추카드(Virtues card)다. 감사 배려 사랑 신뢰 등 52가지 미덕의 의미와 다짐의 말이 담긴 카드로, 비영리 사단법인 한국버츄프로젝트가 벌이는 인성교육 운동의 도구다. 이 버추운동은 미국에서 시작돼 세계 90개국으로 퍼져나갔지만 택시에 적용한 것은 세계 최초다. 지난 2010년 택시기사 20여 명으로 시작해 참여하는 기사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민씨가 소속된 마포모범운전자지회의 경우 처음 3명에서 현재는 10명이 버추택시를 운행한다.

택시기사들은 카드 글귀를 읽은 승객들이 스스로 위로를 받고 깨달음을 얻는 모습에 보람과 자긍심을 느낀다. 택시 경력 20년인 최석환(58)씨는 "대학 수학능력시험 전날 '두렵더라도 당당함을 잃지 말라'는 내용의 카드를 뽑은 한 수험생이 기억에 남는다. '딸 웃는 모습을 보게 해줘 고맙다'는 수험생 엄마 말에는 가슴이 벅찼다"고 전했다.

버추택시 기사들은 짧은 글귀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민씨는 "미덕의 언어가 적힌 버추카드에는 분명 그런 힘이 있다"며 "더 많은 택시기사들이 동참한다면 보다 따뜻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승객의 마음에 다가가기 위해 깔끔한 복장을 챙기고 친절을 생활화하는 등 변화는 기사들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비영리단체가 추진하는 운동이라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버추카드 보급이 쉽지 않다. 전체 택시 중 아직은 극소수에 그쳐 버추택시를 아는 승객도 드물다. 택시기사 김재원(55)씨는 "승객들에게 카드를 선물로 나눠 주고 싶어도 수량이 정해져 있어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글ㆍ사진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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