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에 무대 90 건 뛰어새벽 3시 기상 하루 3시간 운동… 70년간 술·담배·커피 안해공부·매일 무대서는 것이 유머 비결횡령 누명·루머 시련 딛고'우정의 무대' 최고인기때 수직 추락… 확인도 안 하고 악의적 기사 나와미국 갔다 2년 만에 귀국 온갖 고생대박도 공짜도 싫어어린이 프로 데뷔해 군인·노인 프로… 맡은 프로그램과 함께 나이 먹어계속 걸어가는 사람만이 무지개 봐
"키가 작으면 빠릿빠릿하지요. 나쁜 점 하나도 없어요. 이제 키로 말하지 말고 머리로 말합시다. 머리가 커야지, 키 크면 뭐해요?"
'뽀빠이' 이상용(69)씨가 이달로 고희를 맞았다. 송해(86)씨에 이은 두번째 최고령 텔레비전방송 진행자이자 가장 키 작은 방송 진행자이며 가장 알통이 굵은 방송진행자이다. 그가 토요일 아침 6시 10분에 방송하는 '늘 푸른 인생'(문화방송)은 5월초로 진행 만 10년을 맞는다. 그에 앞서 심장병 어린이재단 기금 유용이라는 누명을 쓰고 96년 강제하차한 '우정의 무대'는 11년을, 74년 방송진행을 시작한 어린이프로 '모이자 노래하자'는 16년5개월을 했다. 어떤 프로든 장수를 하는 것이 특징. 한국일보와는 매달 세번째 일요일에 열리는 걷기대회 '거북이 마라톤'을 78년부터 사회를 본다는 인연이 있다. " '모이자, 노래하자'를 보던 아이들이 군대를 갈 때쯤 군인들이 나오는 '우정의 무대'를 했고 그들이 나이가 들어서 '늘 푸른 인생'을 한다"고 말하는 그는 장수의 비결이 "피디 속 안 썩이고 재미있기 때문"이라며 그 힘이 '운동과 독서'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키는 159센티, 몸무게는 61킬로그램, 팔뚝 둘레는 36센티로 '뽀빠이'라는 별명에 여전히 흡사하다. 그를 만났다.
-근육이 여전하시네요.
"매일 세 시간씩 운동을 해요. 후배가 양재동에 사무실을 빌려줘서 개인헬스실을 꾸몄어요. 내가 뽀빠이니까 이걸 유지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헬스클럽 두 달쯤 되면 사람들이 할 일 없어서 나온 사람 취급을 해요. 반말 찍찍 하고 맥주 한잔 해야지 그러고. 헬스실이라고 뭐가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잖아요. 런닝머신 벤치프레스 역기 두 개 아령 두 개. 텔레비전 보면서 두 시간 운동하고 한 시간 걷고 끝나면 동네에 콩나물국밥 잘하는 집이 있어요. 거기서 아침 먹고 경부고속도로 가까우니까 지방 뛰는 거야. 운전? 아직도 직접 해요. 내가 시골 구석구석을 다니니까 다른 사람은 지쳐서 못 따라와."
-무슨 활동이 그렇게 많아요?
"'인생은 아름다워라'라는 주제로 세 시간 동안 웃겨 주는 특강이 있어요. 이게 아주 인기 최고야. 내가 확정된 유머 레퍼토리만 3만2,000개가 있어요. 그 중에 700~800개를 하루에 쓰는 거야. 그러니까 사람들이 나를 찾지. 맨날 똑같은 이야기하면 누가 찾겠어요. 한 달이면 90건을 뛰어요. 돈이 안 되는 곳도 가요. 불러 주는 게 고맙잖아."
-웃기는 이야기, 예를 들면 어떤 거요?
"목사 세 명이 새해에 만났어요. 목사 하나가 우리 교회에 쥐가 많아서 걱정이다, 한 200마리 되나 봐. 다른 목사도 우리 교회도 그래, 한 500마리 되나봐, 미치겠어. 한 목사가 우리 교회는 한 마리도 없다고. 두 교회가 가르쳐달라 했어요. 간단하대요. 쥐가 와르르륵 올 때 천정에 대고 '헌금합시다' 그러면 쥐가 다 도망가는 거에요. 코털과 국회의원의 공통점은 알아요? 잘못 뽑으면 큰일 난다."
-우스개소리를 만드는 비결이 있나요?
"공부하고 매일 무대에 선다는 거. 무대에 안 서면 잊어버리고 깜빡 해요. 하루에 한 권씩 책을 봐요. 우리나라에 나오는 유머책은 내가 다 봤을 거야. 책에서 좋은 말을 읽으면 (메모가 된 종이를 한 장 펴보이며) 이렇게 정리를 해요. 차 핸들 옆에다 붙이고 다녀요. 건널목에 섰을 때마다 읽어요. 그래서 내 거가 됐을 때 마누라 두고 한번을 해요. 마누라가 재미없다고 하면 안 해요. 막 웃으면 해요. 마누라가 좋다는 레퍼토리는 밖에 나오면 터져요. 그런데 책에서 본 거보다 생활 속에서 나온 이야기가 제일 잘 터져. 전철에 사람 많잖아요. 그런데 개 안고 타는 사람들 있잖아요. 개를 안고 있어야 되는데 바닥에 풀어놔. 그러면 개 싫어하는 사람도 있잖아. '에헤 이 개새끼를 누가 풀어놨어' 그러니까 개주인이 '우리 자식이나 마찬가진데. 왜 개한테 새끼 욕을 하고 그러세요?' 그러니까 저쪽에 충청도 할머니가 한마디를 하는 거야. '아유, 어떡하다 개를 낳았디여?'"
-보통 하루 일과는 어떻게 보내세요?
"새벽 3시에 일어나요. 쇼가 없다 그러면 오후 5시 6시에도 자요. 자기 전에 책 읽고 정리해요. 잠 잘자요. 먹기도 잘 먹고. 하루 두 끼 먹어요. 오이소박이 열무김치 익은 거에 밥 말아 먹는 거 좋아해요. '늘 푸른 貫?이 지방을 다니는 프로잖아요. 시골 가면 맛있는 걸 너무 많이 해줘. 그래서 한때는 몸무게가 70킬로를 넘었어요. 운동해서 10킬로를 뺐지."
-건강 비결이 있나요?
"내가 돌 지나고부터는 술을 한 잔도 안했어요.(웃음) 70평생 담배도 커피도 안했어요. 감기가 올 거 같으면 목욕탕 가서 냉탕에 들어가요. 내가 1번으로 좋아하는 게 사우나. 하루에도 몇 번씩 해요. 지방 가면 사우나 있는 곳에 숙소를 잡아요."
-평생을 돌아보면 역시 가장 힘들었을 때는 96년인가요?
"그렇지요. '우정의 무대' 사회를 보며 인기 최고였을 때 수직으로 떨어졌으니까. 내가 (심장병 어린이재단을 만들어서) 34년 동안 심장병 어린이 567명을 고쳐줬어요. 국민훈장도 2개나 탔어요. 훈장이 그냥 주는 게 아냐. 국무총리실에서 다 조사하고 줘요. 그런데 그런 게 하나도 없대. 심장병재단 만들어서 벤츠600타고 40억짜리 집에 산대요. 내가 지프차를 20년째 타고 집은 전세였거든. 파주에 땅을 1만평을 샀다는 거야. 나한테 확인도 안하고 무조건 기사가 나온 거야. 그 땅 있으면 같이 나누자고 했어요. 애들이 가슴수술한 자국을 보여주면서 뽀빠이 아저씨를 믿는다고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해도 그 기사는 안 나와. 그때 한국일보만 나를 믿고 나쁜 기사를 안 썼어요. 방송 녹화하는 데 '불 꺼'소리가 나면서 중단이 되더니 그 길로 잘렸어요. 내가 병원에 입원했는데 잠자는 주사를 세 방을 맞아도 잠이 안 와요. 김수환 추기경님하고 법정스님이 왔어요. 내가 추기경님을 30년을 웃겨드렸잖아. 이 묵주반지도 추기경님이 주신 거예요. 추기경님이 그래. '하느님은 크게 쓸 사람만 시험한다. 크게 쓰려는 것이니 죽지 말라'고. 법정스님이 그래요. '자루를 흔들고 콩깍지를 눌러 밟는 것은 더 담으려고 그런다.' 검찰에서 다 조사해서 무혐의가 나왔는데도 아무도 믿어주지를 않아요. 방송은 끝났지. 마누라는 친구 집에 맡기고 미국 갔어요. 관광버스 가이드 하고 돈 많이 벌었어요. 2년 지나니까 마누라가 오라고 전화를 했어요. 당신이 잘못한 거 없다는 거 세상이 다 알게 됐다고. 그래서 돌아왔어요. 와서 9평 짜리 아파트에 살았어요. 비닐하우스 가서 약장사도 하고 마늘파종도 하고. 늘 새벽같이 나가서 사흘만에나 집에 가니까 아파트 단지에 소문이 났대요. 우리 마누라가 첩이라고. 마누라가 울어요. 고려대 선배인 (하나은행) 김승유 (전) 회장 덕분에 대출을 받아서 40평짜리 빌라를 샀어요. 그 돈 이제야 다 갚았어요. 2001년에 대전문화방송, 춘천문화방송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줘서 방송에 복귀했고요. 지금 내가 '우정의 무대' 때보다 인기가 10배는 더 많아요. 오라는 데가 너무 많아서 거절을 하니까 70 먹은 사람이 거절을 다한다고 웃기대요."
-그런데 고려대 응원단장에 ROTC 장교까지 지냈으면서 왜 제대하고 외판원을 했어요?
"그때 농대 임학과는 취직이 안돼요. 엄마가 아파서 스물다섯에 결혼하고 마누라를 엄마 옆에 붙여놓고 내가 군대를 갔어요. 먹고 살아야 하니까 닥치는대로 일을 했어요. 내가 화진포에서 소대장을 했거든요. 어부들하고 친해. 그래서 오징어 명태를 새벽부터 청량리역에서 받아가지고 팔았어요. 지금도 중부시장에 가면 내가 전설입니다. 새벽에 가게 앞에 놔줘. 오자마자 뜯게. 그런 다음에 인사를 잘해. 아무도 내가 고려대를 나온 걸 몰라요. 이군 이군 그러면서 심부름 시키면 다 해드렸어요. 아침에 인사하면서 오징어 다리, 명태 머리 떨어진 거 달라고 해요. 불량품이라 팔지도 못하니까. 그런 걸 모으면 꽤 많아요. 시장 입구에 가마니를 펴고 3분의 1 가격에 팔아요. 신설동 로터리 옆에 은행에 가서 저금하고 옆에 식당 가서 오징어 북어 떨어진 거 주고 부엌 일도 도와주고 그러면 밥 줘요. 화장품 외판원, 젓갈 장사, 홍시 장사, 번데기 장사 안 해 본 게 없어. 용산고등학교 앞 4거리에서 리어카 갖고 야채장사도 했어요. 경찰 호각소리만 나면 지금도 도망가."
-그런데 어쩌다 방송을 하셨어요?
"내가 말빨이 있었어요. 화장품 외판원을 할 때는 전국 2위도 했어요. 73년 12월 20일 점보는 데를 갔어요. 점쟁이가 '어, 스타가 들어왔네'. 며칠만 더 있으면 사람들이 당신 이름을 막 부른대. 뭐하면 되냐니까 뭐 잘 하녜. 사람들 잘 웃깁니다. 그럼 코미디언 해. 그 말 듣고는 정동 MBC에 있는 대전고 선배를 찾아갔어요. 그때 '유쾌한 청백전'이라는 인기최고 프로그램의 피디야. 코미디언 한다니까 그 좋은 대학 나와서 왜 그걸 해, 그러는 거야. 며칠 찾아가도 안된다길래 빗자루를 사가지고 방송국 앞을 매일 쓸었어요. 9시에 다 출근하면 빗자루 가게에 맡겨 놓고 1층부터 10층까지 다 돌아다니며 인사했어요. 그랬더니 그 형이 너 같은 놈 처음 봤다며 출연시켜줬어요. 장기자랑 할 때 고려대 응원단장 시절 하던 타잔박수를 했어요. 벽돌깨기가 있는데 그거 원래는 벽돌을 깨서 醮?거거든. 그런데 통짜로 놓았더라고. 그냥 박았지. 머리에 피나 나서 뜨뜻한데도 가만 있었지. 거기 두 번 나가고 끝났어요. 그때 KBS는 남산에 있었는데 거기 가니까 꼬맹이들이 많더라고요.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데 어린이 프로더라구요. '모이자 노래하자'. 그래서 거기 애들 정리시키는 분한테 내가 할 테니 쉬라고 했어요. 애들 좋아서 한다고. 좋아서 하면 거기 풍선 바람 넣는 거 하라고 해서 했어요. 그런데 게임 진행하는 애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방송국에서 땀 뻘뻘 흘리면서 도와줬으니 게임 한번 해보쇼. 그래서 게임 진행을 했어요. 위에서 모니터를 하다가 이 놈이 더 잘한다는 거야. 게임 진행을 하다가 이번에는 사회자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하던 김에 한 프로만 해봐요, 그러네. 지나간 대본을 달라고 해서 연습을 했어요. 첫 녹화를 하는데 애들 반응을 보더니 위에서 왜 이제야 나타났냐고. 그래서 16년 5개월 동안 그 프로 MC 했잖아요. KBS라디오 '위문열차'는 24년, '출발동서남북'은 10년, MBC라디오 '뽀빠이아저씨'는 14년, 저는 뭐든 10년은 넘게 해요."
-장수 비결이 있나요?
"죽을만큼 열심히 해요. MC가 늦으면 가수 와봐도 헛 거 잖아요. 그리고 사회자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잖아요. 전체를 알아야겠다. 그때부터 책을 본 거에요. 생각해봐요. 내가 텔레비전에 안 어울리는 사람이잖아요. 키 작지요. 새까맣지요. 나이 많지요. 열심히 하고 오래오래 쓰이려면 책 밖에 없어요. 나는 컴퓨터를 못해요. 컴퓨터에 빠지면 집에 가자마자 마누라도 안 보고 거기에 앉는다 하더라고요. 휴대전화도 옛날 거 써요. 문자 할 줄도 몰라. 카드가 평생에 없어요. 주식 안 하지 펀드 안 하지. 대박 이런 것도 내 인생에는 없어요. 나는 공짜는 싫어요. 내 좌우명이 '가버린 어제를 후회하지 마라. 오지도 않은 내일을 무서워하지 마라. 오늘 최선을 다해라.' 천둥 번개 칠 때 무섭다고 집에 들어가 이불 덮고 누운 사람과 이러다 만다 하고 계속 걸어간 사람 중에 걸어간 사람만이 무지개를 보는 거잖아요."
서화숙 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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