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창조성이 무엇인지는 명쾌하기 말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심리학, 교육학, 철학 등 여러 분야에서 수많은 학자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창의성을 정의하거나 분류했다. 예를 들어 교육이론가인 로데스는 1961년 발표한 논문 '창조성의 분석'에서 무려 64가지의 정의를 분석했다. 그러니까 장차관들이 우리에게 창조경제란 무엇이라고 딱 부러지게 알려주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창조경제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오늘날 '창의력'하면 아무도 이견을 내놓지 않는 절대 선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부모들은 자녀의 창의성을 키워준다면 대번에 귀가 쫑긋해지고, 학교는 창의성을 키우는 교육을 해야 된다는 요구에 전전긍긍하며, 서점에는 창조성을 키우는 법에 대한 책들이 넘친다. 기업들은 모두 다 창조적인 인재를 간절히 찾고 있으며, 드디어는 국가 수준에서 창조성을 국정의 기본 방향으로 삼기에 이르렀다. 바야흐로 창의성을 키우는 것은 성공을 위한 조건을 넘어서 생존의 조건이 되어가는 분위기다.
그런데 정말 창조성이 그렇게 중요하고 성공에 필요한 것일까? 며칠 전에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왔다 가면서 그를 창조경제의 선구자쯤으로 칭송하는 기사가 지면을 도배했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IT 기업인 것은 맞지만, 이 회사는 성공의 발판이 된 도스부터 시작해서, 상당수의 제품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사방에서 긁어 모았던 것으로 악명이 높았고, 창조성으로 시장을 선도하기보다 독점적 위치를 이용한 시장 장악으로 수많은 원성을 들었다. 특히 인터넷이 급속도로 중요해질 때 경쟁업체들이 앞서나가자 자사의 익스플로러를 운영체제에 포함시켜 끼워팔기를 하면서 대규모 반독점 소송을 겪고 회사 분할을 선고 당하기도 했다.
1980년대부터 여러 가지 컴퓨터를 사용해 오면서 보고 들은 이런 저런 일을 기억해 볼 때 마이크로소프트가 과연 혁신과 창조를 상징할 만한 기업인가 하는 데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흔히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성공한 사례로 스티븐 잡스의 애플과 구글을 들지만 창조성을 핵심 가치로 해서 성공한 경우가 그렇게 많을까? 유명한 투자가 워렌 버핏이 투자 대상을 정하는 기준에도 창의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그리 높은 순위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장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회사가 지금 현재 거두고 있는 거대한 성공도 창조적인 성공이라기보다는 창조적인 성공을 잘 따라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심지어 창의성을 발휘해서는 안 되는 분야도 있다. 같은 사업에 대한 보고서를 매년 새로 만들어진 양식에 맞춰 쓰노라면 제발 행정 분야는 창조적이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감기나 배탈로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가 창조적인 치료법을 구사한다면 아무래도 불안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어쨌든 창의성이 세상을 진보시키는 데 필요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창의성이란 상상력과 확산적 사고, 자발성과 같은 긍정적인 태도가 모아진 것이므로 창의성을 키우는 것은 현대 교육의 중요한 목표다. 예술, 과학과 같은 분야에서는 창조성이 선택의 여지가 없이 필수적인 요소다. 좋건 나쁘건, 잘하건 못하건 간에 이들은 늘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고민하고 더 창조적인 일을 꿈꾼다.
창의력에 대한 정의가 분분한 만큼, 창의력을 키우는 방법 역시 단순하지 않다. 그런데 창의력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는 잘 모르지만, 어떻게 하면 창의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지는 분명하고 쉽다. 창의력을 발휘할 틈을 안주면 된다. 학생들을 끊임없이 경쟁시키고, 단순한 일을 반복시키면, 학자들을 행정적인 잡무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게 하면, 예술가가 서류작업과 관료적인 절차에 몰두하게 하면 틀림없이 창조성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경상대 물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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