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걸 두고 '재건축'이라고 하나. 보수(補修) 정도로는 곳곳에 숭숭 뚫린 하자를 메우는 건 불가능하고, 땜질 수준 밖에 안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첫 교육 수장인 서남수 장관이 추진하고 있는 교육정책의 대수술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하자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모를 만큼 망가진 MB 정부의 '교육 아파트'를 허물고 있다. MB 교육정책의 설계 책임자였던 이주호 전 교육과학기술 장관을 겨냥한 측면도 강하다. 이 전 장관이 다른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지 않고 멋대로 지어놓은 부실 건물을 부수고, 그 자리에 새 아파트를 짓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성급히 평가하자면, 100번 옳은 결정인 듯싶다. 이 전 장관이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박한 평가가 나오고, 서 장관은 교육부를 맡자마자 '철거'를 단행하는 걸까. MB 정부 5년 동안 교육정책이 만신창이가 됐기 때문이다. 사람을 키우는 일이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대입 입학사정관제의 취지는 그럴 듯했지만, 막무가내식으로 밀어붙이다 보니 부작용이 쏟아졌다. 입학사정관제 지원에 필요한 고교 학교생활기록부를 학교 측이 멋대로 고친 사실이 감사원에서 적발된 건 약과다. 정부가 주는 인건비를 타먹은 입학사정관 출신들이 뻔뻔스럽게 사교육 기관에 진출해 공교육을 무력화시키기도 했다. 입학사정관 관련 대형 입시 부정이 터지지 않고 있는 게 이상할 정도다. 검증도 안된 선택형 수능 카드를 꺼내들었고, 허울 좋은 '고교 다양화 정책'은 치유가 곤란한 상태다. 개별 학교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자율형 사립고를 멋대로 늘려놓는 바람에 학생을 채우지 못해 운영조차 힘들어진 자사고들이 수두룩하다.
저급한 교육정책들에 대한 우려는 MB 정부 때도 있었으나, 어느 누구도 선뜻 문제 제기를 하지 못했다. 정권에 순치된 건지, 포기한 건지 몰라도 정책 추진과정에서 치열하게 논쟁했어야 할 교과부 직원들은 아예 입을 닫았다. 교육계와 교육단체들의 싸움닭 기질도 실종되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정부가 부실화한 '교육 아파트'를 이렇게 빨리 손대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교육관료를 지내다 물러나 오랜 기간 야인으로 지내며 MB 교육정책의 문제점을 지켜보던 서 장관이 임명되면서 상황이 급반전된 것 같다.
그의 재건축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학부모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대입에서부터 대학 구조조정, 대학 평가, 자사고 문제 같은 지난 5년의 환부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도려내겠다는 각오가 엿보인다. 첫 단추는 8월쯤 나올 대입 관련 정책. 이게 시발점이 될 것이다. 선택형 수능 백지화, 입학사정관제 개선,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 수능 영어 미반영, 뭐 이런 것들이 골격이 되지 않을까 싶다.
박근혜 대통령이 첫 교육 수장으로 예의 교수 출신이 아닌 교육 관료 출신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교육 현장의 아우성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주의나 성과주의에 매몰돼 무리한 강공 드라이브로 교육 현장을 혼돈에 빠뜨린 서생(書生)보다는 실물을 잘 아는 상인(商人)의 능력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교육정책의 재건축을 정확하고 매끄럽게 해낼 적임자는 서 장관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런 만큼 박 대통령도 역할을 해야 한다. 공약이라도 현장과 유리돼 학부모와 교사, 학생들이 등을 돌릴 정책이라면 과감히 포기하거나 대폭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모양이 좋아도, 교육현장을 혼란에 빠뜨리고 고통에 몰아넣은 정책이라면 과감히 버려야 한다. 그러려면 귀를 열고 들어야 한다. 당장 누구보다도 교육장관과 소통해야 한다.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문화 전문가이기에 더욱 그렇다.
대통령의 성공적인 국정 운영에 교육은 필수 항목이다. MB정부 5년을 규정하는 불통, 측근 비리, 토건(土建) 등의 이면에는 교육 현장의 분노가 있었음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김진각 여론독자부장 kimj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